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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악어의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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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25 22:26:29 수정 : 2020-05-26 09: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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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가 영면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주말 모스크바 동물원에서 미시시피악어 ‘새턴’이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부음을 전했다. 동물원 측도 “우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그의 곁에 있을 기회를 얻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애도 성명을 냈다. 향년 84세. 악어의 평균수명 50년을 훌쩍 넘어 천수를 누린 셈이다. 1936년 미국 태생인 새턴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태어나자마자 독일로 보내진 뒤 제2차 세계대전 베를린 대공습의 잿더미 속에서도 살아남아 소련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새턴은 토성의 영어 이름이다. 그는 토성처럼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악어만큼 오해에 시달리는 동물도 많지 않다. 심지어 인간은 그의 눈물마저 왜곡한다. 거짓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부르며 비웃는다. 악어가 자신에게 먹히는 동물의 죽음을 애도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으나 근거가 없다. 악어의 눈물샘과 타액선이 연결돼 있다 보니 먹이를 씹을 때 눈물샘이 함께 자극되면서 나오는 생리현상일 뿐이다. 거짓 눈물을 흘리는 인간의 위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악어에게는 오덕이 있다. 먼저 절제의 미덕이다. 악어는 자기 분수를 안다. 과욕으로 배 터져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악어는 인내의 화신이다. 물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바위처럼 먹이를 기다린다. 1년 동안 완전 금식도 가능하다고 한다.

협력의 덕목도 지녔다. 얼룩말이나 누 떼가 강으로 뛰어들면 함께 사냥한다. 인간들처럼 서로 많이 갖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악어는 타고난 환경보호자다. 커다란 몸집으로 헤엄쳐 다니면서 늪지에 떠 있는 부유물들을 걷어낸다. 물길이 막혀 서식지가 썩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다. 말로만 환경을 외치면서 지구를 쓰레기 천지로 만드는 인간이 범접할 경지가 아니다.

죽어선 가죽으로 헌신한다. 악어의 가죽은 옛날 전사들의 몸을 지켜주었고, 요즘도 수많은 여성들에게 멋진 가방을 선사한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게 인간이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거짓으로 오명(汚名)의 악취를 풍기는 ‘비양심’에겐 악어의 눈물이란 말조차 아깝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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