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난해 결혼한 조성윤(29·가명)씨는 어려서부터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런 그에게도 결혼을 결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둘의 월급을 합쳐도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아 대출을 최대로 끌어모았다. 연애는 둘만의 문제였지만 결혼 이후 서로의 집안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도 부담이었다. 조씨는 “결혼생활은 상대방과 상대 집안, 우리 집안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중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듯하다”고 토로했다.
#2. 영화 연출 일을 하는 김지수(29·가명)씨는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김씨에게 결혼은 선택 가능한 삶의 방식 중 하나다. 연애에서 결혼, 육아로 이어지는 통과의례가 ‘정상’이라고 여겨지지만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여성인 김씨는 “결혼의 메리트(이점)가 뭔지 모르겠다”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 이후 일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내 일과 일상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고용과 주거 불안정으로 결혼 시기를 늦추거나 삶의 질을 위해 ‘비혼’을 택하기도 한다. 특히 결혼에 대한 젊은층의 회의적인 인식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미 도래한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춰 전통적 가족을 넘어 대안적 형태의 공동체를 제도 안에 포섭하고 결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성장 정체, 혼인율 50년 만에 최저
11일 통계청의 ‘2019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따지는 조혼인율이 4.7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23만9200건으로 전년보다 7.2%(1만8500건) 줄어 2011년 이후 8년째 감소했다.

이는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한 탓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이 전국 2만5000여 가구에 대해 실시한 ‘2018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13세 이상 국민의 과반이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여겼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012년 62.7%에서 2018년 48.1%로 줄었다. 특히 미혼 여성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012년 43.3%에서 2018년 22.4%로 급감했다.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이유에도 남녀의 차이가 있었다. 지난 4월 보사연이 펴낸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심층 조사 체계 운영’ 보고서는 19∼49세 미혼 청년층 947명을 상대로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미혼여성은 ‘독신의 여유로움과 편안함’(31.0%)을 첫번째 이유로 꼽은 반면 미혼남성은 ‘주거 불안정’(35.0%)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부연구위원은 “미혼 인구가 증가하는 데는 결혼, 주거 문제에 수반되는 경제적 요인이 중요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일자리 공급이 우선돼야 하지만 경제 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위기가 덮쳐 당장에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청년 결혼기피, 성별 따라 인식 차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들의 인식은 사회적 차별에 기인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임신, 출산, 육아휴직차별 실태조사’ 결과, 출산휴가를 사용한 여성 245명 중 171명(69.8%)이 배치 및 승진에서, 173명(70.6%)이 보상 및 평가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다. 특히 임신·출산으로 인해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았다고 응답한 여성 180명 중 134명(74.4%)이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직장인 김현수(29·가명)씨는 “애인은 있지만 결혼할 의향도 없고 기혼인 친구들을 보고도 부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이유로 “여자들은 한창 열심히 일할 때 애 낳느라 휴직하고 커리어를 포기하는 구조가 여전하다”면서 “친구든 동성 연인이든 다른 방식의 다양한 가구가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청년의 결혼 기피는 성별에 따라 다르게 분석돼야 한다”며 “여성의 결혼 거부 현상은 하나의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윤김 교수는 “결혼제도에 들어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일과 가사 노동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거나 경력단절이나 육아해고라는 위기에 놓인다”며 “지금의 결혼제도에서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쏠림 분산해 부담 줄여야
부부 중심의 전통적 가족이라는 인식을 확대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성가족부가 올 6월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은 법령상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넓히는 데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인·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10명 중 7명가량이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이었던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과)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 데는 부모의 재산, 직업, 고용 형태 등 개인마다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인식 변화라는 공통의 요인이 있다. 전통적인 가족·혼인에 대한 인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종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 쏠림 현상을 분산해 혼인과 출산에 대한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결해야 근본적인 혼인·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단순히 행정의 기능만 이전한 도시가 아니라 각종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조성한 지방 대도시 2~3곳을 만들어 청년을 유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도 “청년 주거·일자리 지원과 함께 실효성 있는 청년의 귀향과 정착을 돕는 정책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숫자’에만 집중하던 출산정책 변화… 정부 지원책 뭐가 있나
정부는 낮은 혼인율과 출산율을 개선할 대책으로 그동안 ‘숫자’에만 집중했던 국가주도 출산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다양한 지원책 중심으로 개편 중인 출산·육아 정책을 살펴봤다.
11일 저출산위원회 등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시기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는 60만원(다태아 100만원)이 지급되는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제도다. 지원금 사용 기간은 출산일부터 1년으로, 대상은 임신부와 1세 미만 영아다. 16주 이상의 임신부는 보건소에서 각종 검사와 철분제와 엽산제 등을 받을 수 있다. 고위험 임신 질환을 진단받고 입원 치료를 받은 산모에게는 비급여 입원진료비가 지원된다. 지역과 아이 수에 따라 출산장려금이나 축하용품 등을 받을 수도 있다.
아이와 함께 일·생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다.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의 임신부는 하루 2시간의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90일(다태아 120일)의 출산 전후 휴가가 부여된다. 육아휴직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 근로자가 각각 1년씩, 1회에 한 해 분할해 사용할 수 있다. 부모 중 첫 번째 육아휴직자는 육아휴직 시작일부터 3개월까지 통상임금의 80%(70만∼150만원)를, 나머지 기간에는 통상임금의 40%(50만∼100만원)를 받게 된다. 또 한 자녀에 대한 두 번째 육아휴직을 지원하는 제도인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에 따라 두 번째 육아휴직자의 첫 3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상한 250만원)로 수령할 수 있다. 지난 2월28일부터는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모든 아동과 가족에 대한 평등한 지원을 위해 한부모나 조손가정은 아동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장애아동수당과 장애아 보육료 지원 등 장애아동의 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 비혼모·부 초기지원 제도는 출산비 등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병원비를 지원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분유나 기저귀 등 물품을 지원한다. 아울러 정부는 청년의 평등한 출발을 위해 신혼부부 행복주택·공공주택, 청년 맞춤형 임대주택 등을 공급하고 청년 전용 버팀목전세대출, 월세대출 등을 통해 주거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이종민·유지혜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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