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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시무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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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28 22:37:42 수정 : 2020-08-28 22: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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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로는 고려에 투항한 신라 6두품 집안 출신이다.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은 것은 상소문 때문이다. 고려 성종에게 올린 ‘시무(時務) 28조’. 남은 것은 22조뿐이다. 조선 세종 때 편찬한 ‘고려사절요’의 기록, “나머지 6조는 경술년 병란에 잃어버렸다.” 경술년 병란은 1250년 몽골 침입을 뜻한다.

시무 28조를 쓴 시대적 배경은 무엇일까. 왕건의 손자인 성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981년. 그즈음 요(거란)는 북방을 평정했다. 송은 종이호랑이로 변하고, 금의 완안부 세력이 꿈틀댔다. ‘요사’ 고려열전의 985년 기록. “(요 성종은) 고려 정벌을 준비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북방은 위태로웠다. 고려 내부는 괜찮았을까. 권력 다툼이 요란했다.

상소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신(史臣) 오긍이 써 올린 ‘정관정요’에서 당 현종을 권하여 당 태종의 정치를 닦도록 한 글을 보건대….” 정관정요는 제왕의 필독서다. 당 태종 이세민 때 오긍이 편찬했다. 최승로는 상소문에 정관정요의 뜻을 새기고자 했던 걸까. 이런 구절도 있다. “간흉이 앞다퉈 나오고 참소가 일어나니 군자는 용납할 데가 없고, 소인들이 제 뜻대로 합니다. 상하는 마음을 합치지 못하고, 오랜 신하와 장수가 잇따라 죽임을 당하고, 골육·인척은 모두 멸망하여….” 세태에 대한 한탄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시무 7조 상소문’. 필명 ‘진인 조은산’이 썼다. 그는 30대라고 한다.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최승로의 상소문을 본뜬 제목이다. 이 글은 지난 12일 게시판에 올랐다. 청와대는 보름 동안 공개하지 않다가 27일에야 공개했다. 감추고 싶었던 걸까. 공개 이틀째인 어제 오후 동의자는 30만명에 가깝다.

비판 내용이 신랄하다. “이 나라를 도탄지고에 빠트렸던 자들은 우매한 백성이었사옵니까, 아니면 제 이득에 눈먼 탐관오리들과 무능력한 조정의 대신이었사옵니까.” 부동산정책을 두고 국토교통부 장관, 여당 대표, 법무부 장관을 비판한 문장에는 울분이 넘친다.

상소문은 왕에게 올리는 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읽었을까. 답은 할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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