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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경의행복줍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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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01 22:46:22 수정 : 2020-09-01 22: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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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영국의 재무관 그레샴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진언한 편지 속에 남긴 말인데 1858년 매클라우드가 ‘그레샴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그레샴의 법칙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비싼 재료의 화폐 ‘양화’가 싼 재료의 화폐 ‘악화’와 동일한 가치를 갖고 함께 유통되면 양화는 사라지고 악화만 통용된다는 말이다. 즉 동일한 화폐 단위라면 금화나 은화는 은닉해두고, 싼 재료의 구리로 만든 동화만으로 거래하기 때문이다.

이 경제 법칙은 사회 곳곳에서 적용되고 있다. 직장인 이직률의 60%가 지나치게 권위적인 상사 때문이라고 한다. 회사로 보면 여간 큰 손실이 아니다. 못된 상사(악화) 때문에 능력과 열정이 가득한 젊은 직원(양화)을 잃게 되는 셈이다. 주변보다 값이 저렴하고 맛이 있는데 손님이 없는 식당주인이 그 원인을 찾아냈다. 식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주인에게는 귀여운 애완동물이지만 손님에게는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존재다. 이 경우 귀한 손님 ‘양화’를 몰아 낸 ‘악화’가 고양이다. 코로나19가 점점 더 위협적으로 퍼지고 있다. 결국 정부는 2.5단계의 거리두기를 발표했다. 2.5단계라는 다소 모호한 숫자에서 우리는 정부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변화된 일상이 아무리 고되고 경제적 손실을 가져와도 대부분 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제 서서히 분노와 절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 한 동이에 검은 물감 한 방울만 떨어트리면 물의 색깔은 금방 변한다.

바로 그 검은 물감 한 방울의 악화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로 진단받았는데도 동선을 숨기고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 이상 증세를 느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생업에 종사하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 이제는 이해할 수도 봐줄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동시대를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분담을 같이 하고 있지만 정말 해도 너무 한다. 이 세상에 내 가족과 내 이웃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고열 기침 등 증세가 나타났는데도 ‘설마’ 하며 애써 부인하고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은 그 ‘설마’가 사랑하는 내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돌아 돌아서 결국 내 가족까지 온다.

나 하나쯤 동선을 살짝 숨긴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나 이런 극도의 이기적인 생각이 과일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다정한 내 이웃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제는.

단 한 방울의 검은 물감이 맑은 물을 사라지게 한다. 그 검은 물감 한 방울이 나 자신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우리는 인간이다.

조연경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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