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어려운 소통 또다시 가로막혀

요즘은 상담이 무척 힘들다. 마스크 때문에 내담자의 표정을 정확히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보다 표정에서 정서적 진실이 포착될 때가 많은데 그걸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혹시나 내담자의 마음을 잘못 읽을까봐, 조심스럽다.
표정 연구의 대가인 폴 에크먼은 얼굴 윗부분 (이마, 눈썹, 눈꺼풀)과 아랫부분 (턱과 입술)의 변화를 통해 감정이 다르게 드러난다고 했다. 두려움과 슬픔을 표현할 때는 얼굴 윗부분이 중요하다. 이마를 찡그리고, 눈썹을 내리고, 눈꺼풀이 처지는 건 슬플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표정 변화다. 눈썹을 추어올려서 눈을 크게 뜨는 것은 두려움과 놀람의 전형적 반응이다.
얼굴의 아랫부분, 즉 턱과 입술은 윗부분과는 또 다른 감정 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입은 행복감을 전달할 때 매우 중요하다. 입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서, 그리고 입 주위 근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가 구분된다. 19세기 프랑스 신경학자인 기욤 뒤센은 진정한 기쁨을 느껴서 웃으면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 주변 근육이 수축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의 이름을 따 진짜 미소를 ‘뒤센 미소’라고 한다. 좌우 입꼬리가 비대칭적으로 움직이면 가짜 미소다. 입 모양 변화는 분노와 분노의 강도도 결정한다. 혐오와 멸시는 입을 꽉 다무는 근육 움직임으로 표출된다.
눈과 눈꺼풀, 이마 주위의 표정 변화만으로는 감정이 제대로 표현될 수 없다. 마스크 뒤에 가려진 얼굴 표정을 볼 수 없는 상대는 반쪽짜리 감정만 느낀다. 그나마 반이라도 읽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 된다. 눈 주위의 표정 변화만 읽어서는 상대의 진심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복잡하고 미묘한 정서는 얼굴 위아래가 총동원 되어야 제대로 표현된다. 얼굴 전체의 표정 변화가 하나로 모여야 정서는 강하게 환기 될 수 있다.
감정이 왜곡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정서적 승인 (emotional validation)이라고 한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 정당하고 옳다는 것을 의사소통 과정에서 확인 받을 수 있어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말로 “당신 마음을 알겠다”고 아무리 외쳐도 얼굴 표정에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으면 대화 상대는 ‘내 감정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라고 느낀다. 정서적 승인에 실패한 것이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옳은 말’에만 의지해서는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오히려 이렇게 하면 인간관계는 깨진다. 가족과의 대화에서 실험을 한 번 해 보라. 하루 종일 감정은 배제한 채 굳은 표정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말만 잔뜩 늘어놓아 보라.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의 마음에 화살을 꽂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만 놓고 보면 전혀 틀린 바가 없는데도 가족들은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기분 나빠할 거다.
표정은 말에 가려진 진심을 보여준다. “너의 진심이 뭐야?”라고 백날 말해 봐야 알 수 없다. 상대의 속내를 정확히 보려면 표정을 읽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스크 쓰기가 일상화된 지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전달되어야 할 정서적 정보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아우성 치고 있는 상황인데, 마스크까지 소통을 가로막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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