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출판(대표 양정섭)이 좀처럼 한곳에서 만나기 어려운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한꺼번에 소개하는 ‘조선이 남긴 그림들’ 시리즈를 시작했다.

11월 초 첫 선을 보인 ‘조선이 남긴 그림들, 01’은 조선조 문인이자 화가 신사임당의 대표작 ‘초충도’를 표지로 조선시대 화가 25명의 약력 소개와 360여 점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출생년을 기준으로 1400~1599년 사이 태어난 화가들 중 엄선했다. ‘시리즈 1’에 실린 화가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이 외자인 화가가 많다는 게 특징이다. 일부 생몰년이 불명확한 화가들은 앞뒤 역사적 배경과 사실들을 바탕으로 연대를 추정했다.
강희안(姜希顔, 1417~1464),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안견(安堅, ?~?), 이상좌(李上佐, 1465~?),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김시(金禔, 1524~1593), 이정근(李正根, 1531~?), 황집중(黃執中, 1533~?), 함윤덕(咸允德, ?~?), 회은(淮隱, ?~?), 윤인걸(尹仁傑, ?~?), 이숭효(李崇孝, ?~?), 이흥효(李興孝, 1537~1593), 이경윤(李慶胤, 1545~1611), 이정(李霆, 1554~1626), 이영윤(李英胤, 1561~1611), 어몽룡(魚夢龍, 1566~1617), 최명룡(崔命龍, 1567~1621), 윤의립(尹毅立, 1568~1643), 윤정립(尹貞立, 1571~1627), 이계호(李繼祜, 1574~1645), 이정(李楨, 1578~1607), 김식(金埴, 1579~1662), 이징(李澄, 1581~1674?), 조속(趙涑, 1595~1668) 등이다.
15, 16세기 화가들의 그림은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은 절파화풍(소상팔경, 설경산수 등)과 조선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안견(安堅, 탄생 1400년 혹은 1418년 추정)의 영향을 받은 안견파 화풍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인 도화원(圖畵院)과 문인화가를 중심으로 그림 작업을 한 이들은 주로 산수화, 대나무, 매화(난), 화조영모(花鳥翎毛), 포도, 소나무, 초충(草蟲) 등을 소재로 삼았다.
그림 기법은 모시나 종이에 수묵을 하거나 채색을 하는 방법이 주류였다. 특별히 이정은 검은색 바탕에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흑견금니(黑絹金泥) 기법을 선보였고, 이징에 화풍이 계승됐다. 시와 글과 그림에 모두 능했던 신사임당은 당대 최고의 만능 예술인이었음이 새삼 확인된다.
그림을 시대순으로 배열한 것은 역사와 민속을 통사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시도이다. 조선시대 미술 작품들을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인물들의 정제된 약력을 통해 이 시대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엿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의 풍경과 그림을 통해 시대적 배경과 생활 역시 복원할 수 있다.
이를 테면 김시의 ‘황우’, 이경윤의 ‘기우취적’, 이영윤의 ‘견우’ ‘동자견우도’, 김식의 ‘고목우도’ ‘목우도’ ‘와우도’ ‘우도’ 등을 통해 조선시대 소(牛)의 생김을 엿보면서 당시 다수 존재했던 소가 현재 주종을 이루는 황소가 아니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개(犬)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주종을 이루는 개가 똥개나 진돗개가 아니었음도 알 수 있다. 이경윤의 ‘화하소구’는 삽살개를 그려놓았다. 조선시대 개 그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개는 삽살개다. 1600년대부터 출생년을 기준으로 하는 화가들의 그림에는 다소 많은 개들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똥개나 진돗개는 일제강점기에나 볼 수 있는 개였음도 그림을 통해 확인된다.
이렇듯 그림을 통해 민속, 박물, 수리, 지지, 역사, 풍속… 등 조선 당대의 수많은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이 책은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 남긴 그림들’을 기획한 경진출판 편집부는 “조선시대 작가와 그림 백과사전적 의미를 지니는 시리즈는 계속된다”고 말한다. 다음 시리즈는 출생년을 기준으로 1600년부터 20세기 초반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을 비롯한 근현대 작품까지 망라한다. 특히 작품 수가 많은 정선 김홍도를 비롯해 신윤복, 이중섭, 김득신, 심사정, 안중식, 허련 등은 별도의 단권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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