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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의 모든 현대문학은 이 책 한 권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흑인 노예 짐. 그는 5센트짜리 동전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닌다. “마녀의 부적”이라며.

왜 동전을 부적으로 삼았을까. 당시의 사회상.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재산이자 소유물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도 인간이기를 포기했을까. 수없이 “나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차별과 모멸에 멍든 삶. 짐은 5센트짜리 동전에 의지해 모진 세파를 견뎌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노예제가 폐지된 이웃 주로 도망치는 짐. 그는 눈물을 삼켰다.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서.

마크 트웨인이 이 소설을 쓴 것은 1884년이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해방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때다. 흑인은 1950년대에도 백인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 나사(NASA)의 흑인 여성 천재 수학자를 그린 영화 ‘히든 피겨스’에 그 실상이 자세히 나온다.

‘인종차별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미국. 그러기에 많은 사람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향한다. 그런 미국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그려진 아픔은 차라리 로망에 가깝다.

인종차별의 역사는 아직도 이어진다. 백인 경찰의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에 목숨을 잃은 흑인들. 가족은 눈물을 쏟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 남편을 잃은 아내,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 그들의 슬픔에 분노한 시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외쳤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흑인이 아니라고 분노하지 않았을까.

그런 흑인이 아시아인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인종차별의 증오심으로. 이번에는 뉴욕 맨해튼 중심가 타임스스퀘어 인근 거리에서 사건이 터졌다. 거구의 흑인 남성은 65세의 필리핀계 여성을 걷어차고 얼굴을 짓밟았다. 흑인 벨보이는 멀뚱멀뚱 쳐다보고, 흑인 지배인은 문을 닫아버린다. 이를 어찌 봐야 하나. 물론 모든 흑인이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그들은 모르는 걸까. 흑인 노예 해방사. 그것은 자유·평등·박애를 향한 가슴 저린 몸부림이지 않았던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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