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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도덕적 우월성·계급의식 빠져… 정책 오류 인정 안해” [세상을 보는 창]

입력 : 2021-05-25 23:00:00 수정 : 2021-05-25 20: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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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진보정부 잘못된 법치·포퓰리즘 비판
1000만원·3000만원 퍼주기 말 되나
사회적 갈등·불평등 해소 등 급선무

윤석열 前 총장의 석사논문 지도교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검찰개혁 요체
선거철 교수·언론인 정치 참여 부정적
‘독립운동가 후손, 교수, 법학자, 국제기구 전문가….’ 송상현(80)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에게는 따라붙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유엔과 독립된 기관으로 2002년 창설됐다. 전쟁이나 집단학살, 반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지도자나 독재자를 수사, 처벌하는 국제사법기구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초대 재판관과 소장 연임을 하며 12년간 초석을 닦았다. ICC 진출 직전까지 그는 천상 법학자였다. 35년간의 서울법대 교수 시절 그를 거쳐간 법조인은 셀 수조차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석사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1945년 암살된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 선생의 손자이자 유니세프 활동가로도 명망이 높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팔순의 나이에도 그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수준 높은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며 진보정부의 잘못된 법치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매서웠다. 국제질서를 꿰뚫어보는 명쾌함도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정치입문 요구를 마다해온 그는 선거철만 되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교수·언론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1년 남은 현 정부의 법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 등 부정적 평가가 많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질서를 세우고 제도를 개선해온 발자취를 보면 현 정부도 대중영합적 포퓰리스트 정부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국민들에게 1000만원, 3000만원 준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갈등, 불평등, 사회적 간극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방향만큼은 올바르게 가야 한다. 이렇게 하라고 국민이 수권해준 게 아닌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진보적 정부의 특성은 자기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총칼로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하면서 특정 세력이나 개인이 정보를 독점할 수 없다. 빨리 변신해야 한다. 도덕적 우월성과 계급의식에 빠지면 반드시 대중영합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번 주장을 하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면 비판적 언론·시민단체·정당을 탄압하고, 검찰·사법부, 언론, 정보기관을 입맛에 맞게 길들인다.”

―법학자로서 검찰개혁을 평가하자면.

“검찰은 칼자루를 쥔 힘있는 기관이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뀐다. 누가 집권하든 정치적 파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검찰을 만들어줘야 한다. (검찰에 대한)외압을 막아주는 건 제도적으로도 충분하다. 내부적으로 인권기준에 맞는 수사절차, 정치가 검찰에 영향을 주지않는 것을 만들어주는 게 검찰개혁의 요체다. 이 정권에서 주장하는 검찰개혁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심이 든다. 검사는 독자적 수사기관이다. 기소도 못 하게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법무장관은 정치인이다. 정치적 영향을 막기 위해 검찰총장을 둔 거 아니겠나.”

―국정 불연속성을 언급했다. 대통령 단임제가 문제라고 보나.

“지금은 권위주의 독재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공고화된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했다. 다만 질 높은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지 못했다. 5년마다 직전 정부 정책을 뒤엎어버리는 국정의 불연속성도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물론 4년 중임제, 5년 단임제 어떤 것이 낫다는 보장이 없다. 헌법 몇 글자 고쳤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다.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거철만 되면 교수·언론인들의 캠프행이 줄을 잇는다.

“일본 호소카와 총리 시절 도쿄대 교수 한 분이 있었다. 그가 느닷없이 법무상 자리에 올랐다. 명문 주류도 아니고, 학자의 정부 출사가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고충을 토로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는 어떤가. 유력 후보가 등장하면 교수·언론인들이 앞다퉈 캠프로 뛰어든다. 못 들어가서 난리다. 사심 없이 전문지식을 봉사하는 기회로 삼는 걸 누가 뭐라 하겠는가. 지성문화가 박약한지, 토양이 척박한지….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우르르 달려든다. 일부 교수들은 캠프로 옮기고도 교수 자리를 물고 안 놓는다. 학자가 보는 정치인은 이상한 동물이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이 지난 17일 인터뷰에서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워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게 진보성향 정부의 특징”이라며 “이 같은 계급의식은 포퓰리즘으로 이어져 사법부, 검찰, 언론, 정보기관을 길들이는 우를 범한다”고 비판했다. 이재문 기자

―윤석열 전 총장이 정치조언을 구했다고 들었다. 본인은 수많은 출사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나.

“청와대 수석·대법관·장관·총리 등 10여 차례 출사 요구를 받았다. 할아버지(송진우) 암살을 겪고 아버지와 밥상머리에서 정치와 연을 맺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마흔을 갓 넘은 서울법대 교수 시절, 세상을 판단할 나이가 됐지만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1982년 전두환 정권 시절 장인(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이 국무총리로 징발됐다. 물밑으로 도왔지만 대통령제 아래서는 할 게 없었다. ‘대독총리’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로 정치는 할 게 못 된다는 생각을 굳혔다.”

―ICC 초대 재판관과 소장 연임 과정에서 보람 있던 일은.

“신설 기관의 틀을 잡는 게 힘들었다. 처음 ICC가 만들어지고 우리나라는 회원국 가운데 분담금도 많이 낼 정도로 ICC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다. 재판관 공고에서 마땅한 사람이 없자 우여곡절 끝에 내가 지명됐다. 2002년 말은 대선 정국이었다. 그러다보니 후보를 내놓고 정부가 관심이 없었다. 하버드, 케임브리지, 함부르크 등에서 교수를 할 당시 제자들의 도움이 컸다. 나흘에 걸쳐 33차까지 투표를 하는데 1차 투표에서 최고 득표를 했다.”

―ICC는 범죄자에 대한 단죄 역할로 끝나나.

“아니다. 과거엔 전쟁이 끝나면 보통 세계은행 등에서 경제재건 타당성 보고서를 낸다. 무상원조, 재건 프로젝트 등에 돈이 소요되지만 전쟁 이후 부패한 정부나 범죄조직에 의해 지원금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ICC가 필요하다. 전범부터 엄벌하고, 검찰·법원 등 사법기관 등이 형식적이나마 만들어진다. ‘죄짓고 살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래야만 (재건비용) 일부는 새나가더라도 일정 수준의 재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ICC 밑에 피해자신탁기금이 생겼다. 피해자를 찾아가 구제하고 인간의 존엄성 회복에도 힘을 쓴다. 응보적 정의에서 나아가 치유적·회복적 정의까지 구현하는 게 ICC의 역할이다.”

―‘고독한 도전, 정의의 길을 열다’는 회고록을 냈다. ‘고독’과 ‘정의’가 주는 메시지는.

“괜한 오해를 살까 해서 안 하려다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많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세상에서 저항이나 비난이 오더라도 뚫고 나가는 건 고독하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지키고 나가는 것이 정의다. 가서는 안 될 길은 가지 않으며 평생을 살아왔다.”

―국제사법재판소(ICJ) 문제이긴 하지만 위안부·강제동원 해법은 없나.

“ICC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개인에 대한 형사 처벌이 주된 임무다. 결국 나라 간 분쟁은 ICJ에서 다루지만 상대방이 동의해야 소송이 가능하다. 소장을 내더라도 유효하고 적법한 소(訴) 제기로 취급되려면 일본 협조 없이는 어렵다. 결국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유감스럽다.”

―최근까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을 지냈다. ICC와 연관성이 있나.

“서울대가 동숭동에 있던 시절, 살던 동네가 돈암동이었다. 당시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탈북자, 난민,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가 많지만 당시엔 어린이, 노인, 장애인뿐이었다. 효 사상에 맞는 거 같아 노인돕기를 했는데 2∼3년 지나서 ‘금수저로 태어나 국회의원 하려고 쇼 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더라. 정치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 1972년부터 어린이 돕기로 바꾸면서 유니세프 봉사를 시작했다. 1992년부터는 한국이 수혜국에서 지원국이 되면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전 세계 65개국에 사업장이 있다. ICC소장 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 자격으로 아프리카, 동남아 등 수많은 곳을 다녔다. ICC 신탁기금과 유니세프 지원이 중복되지 않도록 효율적 원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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