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와인 스월링으로 산소와 부딪히며 맛과 향 피어나/인간도 와인처럼 부딪히면서 자신만의 인생꽃 피워내/최태호 아베크와인 대표 와인에세이 ‘잔을 흔들면 와인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 출간

와인을 마실 때 와인잔을 빙빙 돌리며 휘젓는 것을 ‘스월링(Swirling)’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침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 잠들어 있던 와인을 깨우는 과정이죠. 오랜 시간 좁은 병속에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요. 와인은 잔에 따라져 산소와 만나면서 한껏 기지개를 켜고 그제야 자신이 지닌 향과 맛을 드러낸답니다. 스월링은 이런 와인의 맛과 향이 더 빠르게 피어나도록 돕는 과정이죠. 우리 인생도 이런 와인과 비슷해요. 와인이 잔속에서 회오리치듯 인간의 삶도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한걸음씩 나아가 자신만의 인생꽃을 피우니까요.
새로 나온 와인서적 ‘잔을 흔들면 와인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지은이 최태호·출판사 예문아카이브)은 이런 우리의 삶을 와인으로 풀어낸 에세이입니다. 유럽 와인 전문 수입사 아베크와인 대표이자 와인 웹 매거진 더 센트 발행인인 저자는 부산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했으며 국제와인전문가 과정인 WSET 레벨3 등 많은 와인 관련 과정을 수료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3년부터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대동대학교에서 마케팅 트렌드와 와인 이론 및 실무를 강의하고 있고 매년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에서 개최되는 국제 와인 품평회에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의 대학 강의와 와인 실무 경험을 살려 부산여성문화회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국제신문 아카데미에서 일반인을 위한 와인과 마케팅 강의에 집중하고 있으며, 와인이 대중적인 문화로 발전 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는데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국제신문 와인 칼럼 ‘최태호의 와인 한 잔’을 3년째 연재 중이며 이중 60편을 선별해 인문학적인 와인 에세이 ‘잔을 흔들면 와인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을 펴냈습니다.
저자는 와인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와인과 삶, 와인과 문화처럼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와인이라는 주제로 풀어냅니다.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 지식에 목말라 있던 시절, 와인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다니게 된 저자는 와인을 몰랐다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가보지 못했을 곳들의 경험이 새로운 시각과 깨우침을 주었다고 믿습니다.
특히 저자는 와인과 삶은 많이 닮았다고 말합니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재배에는 이상적인 기후조건과 날씨가 매우 중요하죠. 충분한 습도와 온도가 있어야 하고 포도의 성장 주기와 날씨가 잘 맞아야 합니다. 포도 재배와 양조 과정을 알면 와인의 품질을 더 잘 평가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의 생애를 알아야 온전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와인을 마실 때 온도가 매우 중요하든 인간관계서도 ‘감정의 온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열과 빛을 싫어하고 습도에도 민감해 보관 장소가 중요하죠. 알코올 도수가 25도를 넘으면 미생물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위스키 등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보관 온도나 기간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와인은 그렇지 않답니다. 일반적으로 화이트와인은 섭씨 10~15도, 레드와인은 15~20도, 그리고 샴페인은 10도 정도로 마시면 좋지만 반드시 정해진 법칙은 아닙니다. 가벼운 레드와인은 차게 마실 수 있고 요즘 같은 더운 여름에는 셀러에서 꺼낸 와인은 실온에서 금세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모두 차게 시작하는 것이 좋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조건이라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사람관계도 마차가지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심리 작용, 기본적인 의사소통, 우연적 요소 등으로 사람간의 만남에서도 감정의 온도가 차이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상대방의 눈과 표정을 보고 감정의 온도를 맞춰야 비로소 제대로 소통이 열린다고 말합니다.
와인의 가격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와인은 마시는 재미와 여유가 있기 때문이죠. 비싸고 잘 알려진 와인이 아니라도 계절에 맞고 분위기에 맞는 와인이라면 와인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준다는 것이 저자의 철학입니다.
따라서 값 비싼 고급 와인이든 저가 와인이든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니 잘 알려진 유명한 와인이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특징이 있는 와인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보라고 저자는 권합니다.

저자는 Part 2 ‘와인은 마시기 위해 있는 거잖아’에서 와인은 술이지만, 자신을 표현하고 새로운 인연을 맺게 해주는 명함이라고 말합니다. 공부하면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와인과 함께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더 소중하다고 역설합니다. 값비싼 명품 와인도 함께 마실 친구가 없다면 자신이 가진 좋은 와인은 한 병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아무리 많은 와인을 가지고 있어도 마시지 않은 와인은 이미 자기 와인이 아닌 것처럼 와인을 마실 때 격식 있게 마셔야 촌스럽지 않다는 생각은 이제 버리라고 저자는 얘기합니다. 비싸고 유명한 와인보다 ‘내입에 맛있는 와인’을 찾아서 마실 수 있다면 우리의 식탁은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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