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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DJ·노무현·문재인 못다 이룬 꿈 완성… 그것이 저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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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22 06:00:00 수정 : 2021-07-22 02: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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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뜨는 이낙연

‘장남의 책임감’ 정권 재창출 투영… 결선행 티켓 ‘가시밭길’

한때 ‘어대낙’ 독주체제서 내리막길
“뼈아픈 좌절과 성찰의 시간 겹쳤다”

최근 지지율 반등하자 ‘반낙연대’ 협공
당 안팎 “이대로라면 ‘원팀’ 불발” 우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5일 비대면으로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출마영상 캡처

“민주당다운 승리, 그것이 저의 운명 같은 책임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경선후보는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자신의 ‘책임’으로 규정했다. 지난 7일 민주당 예비경선 ‘정책 언팩쇼’ 무대에 올라선 그는 이밖에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을 완성하는 일, 그것 또한 우리 책임”, “청출어람, 세 대통령에게 배웠지만 더 잘하고 싶다. 그것이 저의 특별한 책임”이라며 “제가 그 책임을 다하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허락해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권을 개인적인 성취 대상이 아닌 ‘사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책임은 이낙연을 관통하는 단어다. 이 후보는 대담집 ‘이낙연의 약속’에서 ‘지금까지의 삶을 적분(積分)하면 무엇으로 요약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책임이다. 그때그때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했다”고 답한다. 이어 “좀 설렁설렁 살아도 될 텐데 지나치게 속에 품고 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덧붙이며 평생 어깨 위에 지녀 온 책임의 무게를 표현했다.

 

◆40.2%→ 11.9% 폭락에도…“당권도 책임”

 

‘어대낙’(어차피 대세는 이낙연)에서 ‘단호박’(단호·절박)으로 변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인 ‘민주당 대표’ 또한 그에겐 책임이었다.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이자 역대 최장수(2년 7개월) 총리를 마친 지난해 1월 이 후보는 각종 대선 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견고한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4·15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에 출마해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를 꺾은 직후 이뤄진 리얼미터·오마이뉴스 월간 정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선 당시 2위였던 이재명 경선후보(14.4%)의 3배에 달하는 40.2%의 지지율을 얻어 같은 조사상 11개월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지율은 이후 9개월 연속 하락했고,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난해 3월엔 같은 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34.4%), 이 지사(21.4%)보다 한참 낮은 11.9%로 3위에 머물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선 경선후보(왼쪽)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박봉정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 안팎에선 이 후보가 ‘사이다’ 별명을 얻은 총리 시절과 달리 당 대표 역할에 갇혀 ‘이낙연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지지율도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 대표 시절 ‘추·윤(추미애·윤석열) 갈등’ 등 민감한 이슈에는 즉답을 피하고, 올해 초 제기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지지율 폭락의 주요 배경으로 지목됐다. 이 후보는 대담집에서 이와 관련해 “뼈아픈 좌절과 심연 같은 성찰의 시간이 겹쳤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난 3월9일 기자간담회에서 당 대표를 지낸 게 대권 행보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가 아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코로나의 조기극복과 민생 안정, 경제 회복이라는 큰 숙제를 앞에 두고 (여당 대표직을) 외면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지난해 여름(8·29 전당대회)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권과 마찬가지로 당권 또한 사명으로 여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18일 전남 광양시 옥룡사지를 둘러보고 있다. 이낙연 캠프 제공

◆장남의 책임, 정치인의 책임

 

이낙연의 책임감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됐다. 1952년 전남 영광의 가난한 농부가 낳은 10남매 중 세 남매가 어린 나이에 하늘로 떠나면서 삼남이었던 이 후보가 장남이 됐다. 이 후보는 대담집에서 “중학교 3년 동안 일기를 썼는데, 거기엔 늘 장남의 책임감 같은 게 가득 차 있었다”고 밝혔다. 광주제일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당시 친구의 권유로 사법고시에 도전했지만 포기한 것 또한 “‘동생들은 자라고 있는데 난 지금 뭐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그는 국내 최초 투자신탁 회사인 한국투자신탁을 거쳐 1979년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했다.

 

이 후보는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해 전남 함평·영광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21년을 기자로 살았다. 그중 10년은 정치부 기자로서 ‘동교동계’를 출입하면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1987년 DJ의 두 번째 대선 도전 땐 일명 ‘마크맨’(전담 기자)이 됐고, 당시 야당 총재였던 DJ는 승용차로 이동할 때 이낙연 기자에게 옆자리를 내어주었다. 2년 뒤 DJ는 이 후보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했지만 이 후보는 도쿄특파원을 선택했고, 현재 대표적인 지일(知日)파 정치인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2002년 9월 24일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이낙연(왼쪽) 대변인 등 대변인단과 오찬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후보는 여의도 입성 이후 총 5번 국회의원, 전남도지사, 국무총리, 당 대표를 거치며 ‘거물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특히 다섯 차례에 걸쳐 ‘당의 입’인 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2001∼2002년 두 차례의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2002년 대선 당 선대위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2007년 대선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등을 거치며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5선 대변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16대 대선 당시 낸 ‘초보운전자를 위한 격언’이라는 논평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새천년민주당 일부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대선 후보 교체를 요구하며 잇따라 탈당하던 때였다. 이 후보는 탈당자들을 향해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고 가겠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이 후보는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문 대통령과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주변의 의견에 “문재인정부에서 절반 이상을 2인자를 했는데 배신할 수 없다. (대통령을) 안 했으면 안 했지, 그 짓(차별화)은 못한다”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후보 측근들은 “‘이낙연식 책임’이 무엇인지 집약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골든 크로스? ‘반낙연대·원팀’ 험로

 

이 후보는 현재 여권 선두 주자인 이 지사를 맹추격하고 있다. 당 예비경선에서 이 지사의 ‘바지 발언’ 등이 논란이 되면서 이 후보가 이 지사 지지율 하락분을 일부 흡수한 모양새다. 이 후보 측은 “7월 말, 8월 초에 ‘골든 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 후보 앞은 ‘가시밭길’이다. 이 후보가 반등 모멘텀을 잡자, 결선행 티켓이 달린 ‘본경선 2위’ 자리를 다투는 경쟁자들이 일제히 협공에 나섰다. ‘반명(반이재명) 연대’에 이어 ‘반낙(반이낙연) 연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전략적 인내를 감내했던 이재명 후보 측도 전면전에 나서고 있어 후보 간, 지지자 간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대로라면 누가 후보가 되든 ‘원팀’이 불발돼 본선이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선대위장 DJ 가신 설훈, 언론계 출신도 다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경선후보의 선거대책위인 ‘필연캠프’는 ‘필승 이낙연’의 줄임말이다. “이낙연 대통령은 필연”이라는 뜻도 담겼다. 캠프에는 친문(친문재인)계 의원들과 과거 총리실, 언론계 출신 인사들이 눈에 띈다.

필연캠프 좌장 격인 선대위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 그룹인 동교동계 출신 설훈 의원이 맡았다. 총괄본부장 박광온, 상황본부장 최인호, 정책총괄본부장 홍익표 의원 등 캠프 고위급 인사들에 친문 핵심 의원들이 두루 포진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도 여럿 참여했다. 윤영찬 의원(전 소통수석)은 캠프 정무실장, 정태호 의원(전 일자리수석)은 정책본부장, 김영배(전 민정비서관) 의원은 선대위 부위원장이다.

 

필연캠프는 호남과 영남, 서울·경기, 충청, 강원, 제주 등 전국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전국구 캠프’로 구성됐다.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은 이개호 의원은 이 후보의 지역구였던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을 물려받은 바 있다. 충남 출신의 박완주 의원은 부위원장, 제주의 오영훈 의원은 수석대변인, 강원의 허영 의원은 조직기획본부장을 맡았다.

 

예전 총리실 인사들도 속속 합류했다. 정운현, 배재정 전 총리 비서실장은 각각 캠프 공보단장과 대변인을 맡았다. 남평오 전 총리 민정실장은 이 후보 싱크탱크인 ‘연대와 공생’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 후보와 같은 기자 출신인 박광온·윤영찬 의원 외에도 신경민 전 의원, 양기대 의원 등 언론계 출신들도 캠프 중책을 맡고 있다. 신 전 의원은 선대위 상임부위원장, 양 의원은 총괄부본부장에 임명됐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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