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말랄라 “탈레반, 폭력으로 여성 억압”
탈레반 발표 내용 일축하고 ‘강대국의 행동’ 촉구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처음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탈레반의 남녀차별 교리를 들어 ‘아프간이 탈레반 수중에 들어가면 예전처럼 여성과 소녀들의 삶이 피폐해질 것’이란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과거 탈레반의 총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24)는 “아프간의 자매들이 걱정된다”는 말로 국제사회가 일어나 탈레반에 맞설 것을 촉구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 점령 후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탈레반은 이슬람 법률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며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무장조직 탈레반의 대변인이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내고 브리핑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군대를 보내 아프간을 침공하기 전 아프간을 다스린 탈레반은 여성 차별 정책으로 악명이 높았다. 10대 소녀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성인 여자는 고등교육을 받거나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금지됐다. 탈레반은 여성들에게 부르카로 온몸을 가리도록 강요했으며, 수시로 총격 등 테러를 저질러 공포에 질린 여성들이 아예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내게 만들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이런 탈레반의 공포정치가 얼마나 잔혹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파키스탄 출신인 말랄라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마을을 점령한 일명 ‘파키스탄 탈레반’(TPP)의 눈을 피해 옷 속에 책을 숨기고 두려움에 떨며 등교해야만 했다. 그는 15살이던 지난 2012년 하굣길에 그만 탈레반 조직원이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탈레반은 학교에 갈 권리를 주장하는 소녀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표적 삼아 살해하려 했다.
말랄라는 영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겨우 회복했다. 탈레반의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여성과 소녀들의 교육권 확보에 앞장선 공로로 201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는 노벨평화상 역사상 최연소 수상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실은 기고문에서 “지난 20년간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 그들이 약속받은 미래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아프간의 자매들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일부 탈레반 인사들이 ”여성이 교육받고 일할 권리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는 “여성 인권을 폭력으로 탄압한 탈레반의 역사”를 근거로 제시하며 이를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말랄라는 국제사회와 중국 등 강대국, 그리고 파키스탄·이란 같은 아프간 인접국들을 향해 “아프간 여성과 소녀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우리는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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