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꼰대’지만 한숨 많은 외로운 존재… 직장인들 열광한 ‘김 부장 이야기’

입력 : 2021-09-05 08:00:00 수정 : 2021-09-06 14:24:37

인쇄 메일 url 공유 -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송희구 작가 인터뷰

작가는 실제 대기업 과장으로 근무중인 12년차 직장인
“김 부장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 내 미래 모습
남 질투하는 김 부장, 과시하는 정 대리도 다 내 마음”
회사 내 부동산 전문가 ‘송 과장’은 실제 작가 이야기
“가난이 두려워 신입 때부터 쉬지 않고 부동산 공부”

“최근 많이 느낀 게 부장님들의 한숨 소리였어요. ‘나가면 뭐 먹고 살지’ 이런 얘기들을 듣다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제 미래 같기도 했어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 이야기)의 저자 송희구 씨(38)는 지난 1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이나 신입사원이 주인공인 기존 직장 이야기와 달리 ‘꼰대 부장’을 소재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3월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한 김 부장 이야기는 한 달 만에 평범한 직장인인 그의 블로그에서 200만회,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만 1000만회 넘는 조회 수를 각각 기록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 ‘김 부장편’과 ‘정 대리·권 사원편’ 2권의 책으로 출간됐고, 3권 ‘송 과장편’도 곧 나올 예정이다. 드라마와 웹툰도 준비 중이다.  

 

주인공 김 부장은 모 대기업에서 25년째 근무 중이다. 서울에서 자가로 살고 있으며, 연봉은 1억 정도에 실수령액 650만∼700만원, 주식도 1000만원 정도 투자하고 있다. 주차장에 늘어선 임원들의 제네시스를 바라보며 자기도 저 차를 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다가 BMW에서 내리는 정 대리와 마주친다. ‘감히 대리가 외제차를?’이라고 괘씸해 하면서도 자기는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자신보다 비싼 집에 살고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배 아파 못 견딘다. 저 잘난 맛에 살면서도 회사에서 내처지는 동기들을 보며 슬슬 불안해진다. 

 

작가가 대기업에서 11년째 일하면서 만난 실존 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디테일하게 심리를 묘사해 극사실주의 소설이라는 평도 나온다. 1권에선 꼰대 김 부장 이야기가, 2권에선 수입차에 명품을 두르고, 미슐랭 식당에서 데이트하는 사진들을 SNS에 올리는 데 열중하는 정 대리와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직장 내 부조리에 상처받고,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 고민하는 권 사원 등 2030 직장인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상무와 부장에게 부동산 투자 조언을 해주고, 후배들에게는 인생 조언도 가끔 하는 송 과장도 사실 송 작가 본인이다. 3권에서는 송 과장이 달콤한 주말 휴식도 포기하고 부동산 투자에 몰두하게 된 배경과 부동산 고수를 만난 일화, 실전 투자 스토리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펼쳐진다.

 

이렇게 주변 인물들을 묘사한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고 실명으로 책까지 출간했지만 아직도 회사에선 그가 ‘그 작가’인 줄 모른다고 한다. 우연히 책을 사서 그의 이름을 본 직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조심스레 사진과 영상 촬영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모자를 쓰고 가도 되느냐고 물으며 “말주변이 없으니 편집만 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지난 1일 훤칠한 키에 노란 모자를 눌러쓰고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났다. 부장에게는 “볼 일이 있다”며 연차를 내고 왔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부장 이야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직장 생활과 부동산 얘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 제가 중점적으로 쓰려고 했던 건 사람들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감정, 심리 묘사였다. 우리가 흔히 느끼지만 말로는 할 수 없는 감정을 글로 표현해 나도 한 번쯤은 느껴봤다, 그런 면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같다.”

 

-어떻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대기업 꼰대 부장을 소재로 한 이유는

 

“전업 작가가 아니다 보니까 어떤 기획이나 집필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제가 많이 느꼈던 게 부장님들의 한숨 소리였다. ‘나가면 뭐 먹고 살지’ 이런 얘기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제 미래 같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김 부장이라는 캐릭터가 제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세상이 되게 빨리 변하고 있고, 그들에게 너도 빨리 변하라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변해야 알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들을 위한 위로나 공감은 없는 외로운 존재들이다.”

 

-김 부장은 실제로 작가가 만난 부장 3명을 혼합한 캐릭터라던데.

 

“한 분은 저한테 신도시 ‘1+1’ 상가를 물어보시길래 사지 말라고 했는데 사셨다. 지금 3년째 공실인데 본인은 아직도 잘 샀다고 생각한다. 또 한 분은 아랫사람들 말 안 듣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데 본인은 남의 말을 되게 잘 듣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다. 마지막 한 명은 믹스 커피를 엄청 많이 마시는 분이다.”


-독자들이 꼰대 김 부장을 비웃고 욕하다가 점점 그를 동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뭘까. 

 

“글에 김 부장의 내면이 (적나라게) 다 드러나는데 남을 질투하고 배 아파하는 경쟁심리나 박탈감이 독자들 마음속에도 일부 있으니까. 그런 김 부장이 변하고,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김 부장처럼 회사에서 나간 분들을 지켜본 경험이 녹아 있는 건가.

 

“실제로 김 부장처럼 많은 분이 회사를 나가셨다. 한 번은 제가 깍듯이 모시던 임원께서 퇴직 후 중소기업 임원으로 다시 취직하셔서 우리 회사에 영업하러 오셨다. 그런데 저한테 인사하시면서 명함을 이렇게 두 손으로 주시고, 제 앞에서 발표하셨다. 제가 그분 앞에서 발표하기 위해 며칠간 PPT 수정하고 떨면서 발표했는데 말이다. 아, 진짜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싶고, 기분이 되게 묘했다.”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책으로 나온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저자 송희구 씨는 지난 1일 세계일보 스튜디오에서 “아직도 회사에서는 제가 이 이야기를 쓴 줄 모른다. 한 분 빼고”라며 웃었다. 이제원 기자

-이야기에서 최 부장은 김 부장과 정반대 상사로 묘사된다. 직장에서 이상적인 상사는 어떤 사람일까.

 

“처음엔 능력이 뛰어나고 열정이 넘치는 분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으로서 존중해주고 그 사람의 성과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좋은 상사 같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랫사람들은 조금만 자기한테 무관심하거나 약간의 불이익이 보이면 좋은 상사가 아니다,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팀장, 임원이라는 자리가 어렵고, 저도 할 자신이 없다.”

 

-정 대리와 권 사원도 회사 후배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던데.

 

“(정 대리처럼) 자기만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남에게 잘 보기 위한 소비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권 사원처럼 직장 생활과 삶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하는 친구들이 있다. 뭐가 옳다고는 말 못 하겠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고,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인데 저도 가끔 그렇게 미래 걱정 안 하고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이렇게 여가 시간 다 포기해 가면서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가끔 하는데 그런 고뇌는 3권에 풀어놨다.”

 

-매일 오전 6시쯤 출근해 한 시간씩 책을 보고 글을 쓴다고 했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했나.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했다. 일찍 출근하면 (지하철 요금이) 300원 싸기 때문이다. 그 돈을 아끼기 위해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서 씻고 바로 나갔다.” 

 

-김 부장 이야기는 ‘부동산 소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부동산 이야기가 스토리 전개의 큰 축이 된다. 작가의 지식과 내공이 녹아 있다. 11년 전에는 지금처럼 부동산 투자가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었는데 신입사원이 부동산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이유는.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되게 부유하게 자란 줄 안다. (실제론) 말도 안 되게 가난했고, 그 가난이 너무 두려워서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부동산을) 공부했다.”

 

-드라마 각본을 직접 쓰고 있다고 했는데 김 부장은 어떤 배우를 염두하고 있나.

 

“글을 쓰면서 어떤 배우를 생각하면서 쓰지 않았다. 그래서 독자들이 댓글 달아주신 그 분들(이성민, 김응수 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차승원 배우가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영화 ‘선생 김봉두’나 ‘이장과 군수’에서 보여주신 모습을 보면. 드라마 분위기는 약간 블랙코미디 식으로 웃기기도 하고 의미와 감동도 주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12부작 정도 생각한다.”

 

-김 부장 이후 다음 작품도 구생해놓았나.

 

“다음 작품은 김 부장과 달리 픽션(허구)으로 갈 것이다. 제약회사 직원이 약품을 잘못 개발해 사회에 여러가지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다.”

 

-책 쓰고 시나리오 쓰면서 직장을 병행하기 쉽지 않을텐데 전업작가의 길을 갈 생각도 있나.

 

“아니다. 저는 전업 작가가 될 만큼 뛰어난 능력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직장생활은 계속 할 거다. 글 쓰는 시간은 하루 1시간 밖에 안되기 때문에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츄 '상큼 하트'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조이현 '청순 매력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