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만 쓰이는 MZ세대
英·美서 개념 나왔지만 합친 용어 없어
보통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 아울러
기성세대와 경계 두려는 욕구서 탄생
기업·정치인들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
뭐가 어떻게 다르나
M세대 경제 상황 좋아 사회 진출 용이
Z세대는 저성장 시기에 취업 뛰어들어
역사·사회적 경험 외 생활양식도 달라
한국사회 맥락에 맞는 세대구분 필요
‘세대론’ 그 너머를 바라봐야
무분별한 구분 고정관념·편견만 생산
다름보다는 공감을 위한 도구로 인식
각각의 세대 특성을 좀더 세분화 시켜
함께 고민을 찾아내고 해결점 찾아야
#1. “요즘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대학 다닐 때와는 다르단 걸 많이 느껴요. 제 학창시절만 해도 교수님을 뵙는다고 하면, 미리 약속을 잡고 연구실로 찾아가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요즘 친구들은 카카오톡으로 쉽게 말을 걸거든요. 친구에게 묻거나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제게 묻는 학생도 있어 ‘내가 네 친구는 아니잖니. 그런 건 직접 알아보렴’이라고 타이른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특수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해도 요즘 대학생들은 동기간의 유대감이 크지 않아요. 친한 사이가 아니면 동기끼리도 서로 존댓말을 하더군요. 예전엔 동기들끼리 으쌰으쌰 하며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는데…. 확실히 저희 때랑은 달라요. 요즘 친구들은.”(36세 미술대학 시간강사 A씨)
#2. “회사 생활 2년차 부서 막내인데 제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담당 임원인 상무님이나 부서장인 부장님도 아닌 바로 위 과장님이에요. 제게 주어진 업무에 대해 제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서 업무를 수행하면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친구들은 선배한테 확인도 안 받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하냐’며 타박을 주곤 해요. 요즘 같은 코로나19 시국에 회식을 꼭 해야 하나 싶은데, 자율 참석이라고 불참하면 다음 날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며 혼내곤 합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시간이 되면 바로 퇴근하는데 대뜸 ‘부장님도 퇴근 안 했는데, 막내가 먼저 퇴근하면 되냐’라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젊꼰’(젊은 꼰대)의 전형인데, 본인은 꼰대인지를 모른다는 게 함정입니다. 가끔 저한테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이 힘을 내야지’라고 말하는데, 왜 과장님과 저를 한데 묶는지 모르겠다니까요.” (23세 대기업 사원 B씨)
1985년생 A씨와 1998년생 B씨의 물리적 나이 차이 숫자는 ‘13’. 그렇지만 두 사람이 속한 또래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의 거리는 ‘13’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A씨와 B씨는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인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의 프레임 속에서 ‘요즘 것들’이라며 한 묶음으로 취급받는다.
출생연도에 따라 세대를 분류하고 그들의 특성을 설명하는 방식은 어제오늘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만 MZ세대 부류는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는 그 범위도 40대 초반부터 10대 중후반까지 굉장히 넓게 퍼져 있고 특성 또한 엄연히 다름에도 언제부턴가 그들을 한데 묶어 하나의 세대로 취급하고 있다. 정작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들은 스스로를 MZ세대라고 부르지 않으며, MZ세대라고 묶이는 것도 납득하지 않는다.
◆MZ세대, 한국에서만 쓰인다고?
세대라는 개념 자체가 출생연도로 명확히 자르기 힘든 측면이 있다. 미국의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1991년 출간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 밀레니얼세대도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다. 어떤 곳에서는 밀레니얼세대를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20년에 가까운 기간 출생한 모든 이들을 칭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1980∼81년생부터 1994∼96년생까지, 두부 자르듯이 선명하게 구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베이비붐 초기세대(1955∼64년생)의 자녀 세대를 뜻하는 에코세대(1983∼90년생)와 그들의 동생격인 에코붐세대(1991∼96년생)가 M세대에 속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후속 세대인 X세대와 Z세대의 가운데에 위치한다고 해서 Y세대로도 불린다.
X세대와 Y세대 다음에 위치한다고 해서 알파벳 ‘Z’가 붙은 Z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젊은 세대를 뜻하기도 하고, 1995∼97년생부터 2004년생까지 끊기도 하고, 2010년생까지 길게 보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Z세대는 ‘광의’의 밀레니얼세대 구분에 따라서는 그 속에 완전히 속하는 교집합이 되기도 하고, 엄격한 ‘협의’의 구분에 의하면 1990년대 중반을 놓고 밀레니얼세대와 구분되기도 하는 것이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 모두 영미권에서 처음 나온 개념임에도 이를 합친 MZ세대라는 용어는 사실상 한국에서만 사용된다는 게 독특한 양상이다. MZ세대를 최대한 넓게 보면 1980년생부터 2010년생까지, 30년을 아우른다. 마흔 살이 넘어 대기업 차장급까지 진급해 중간 관리자가 된 1980년생부터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2010년생을 한 세대로 묶는 게 어불성설이다.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를 10년 단위로 구분하는 반면 MZ세대만 유독 20년 이상의 시간을 한데 뭉뚱그려 묶어 분류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굳이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최소 20대 중후반, 아니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등 성장기에 디지털 문화를 향유해 해당 문화에 익숙한 것 정도 아닐까.
그렇다면 거의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MZ세대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젊은 세대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용어가 통용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수진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젊은 세대라는 집단을 구획하고 구별하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기인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기성세대만의 산물만은 아니다. MZ세대라 불리는 이들 역시 기성세대들과 경계선을 두고 싶어하는 욕구 역시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MZ세대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기업이나 정치권, 그리고 이들의 움직임을 보도하는 미디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 과정에서 최대한 타기팅을 넓히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기업들이 MZ세대를 묶어서 활용하는 이유는 아직 사회초년생이거나 학생 신분인 Z세대들은 구매력이 약하기 때문에 대다수가 사회에 진출했고, 구매력이 뛰어난 M세대와 함께 묶어 마케팅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에서도 ‘젊은 사람들’의 표심을 분석하기 위한 방편으로 MZ세대라는 개념이 굉장히 효율적이어서 최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너무나 다른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
전문가들은 나이로만 세대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이 책임연구원은 “나이로만 세대를 구분하는 것은 인구통계학적인 변수만 고려한 것이다. 세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분해하려면 연령이 들어감에 따라 지위나 역할 등의 특성이 변해가는 ‘생애주기 효과’와 5년 혹은 10년 등으로 구분한 동일한 연령대가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경험을 함으로써 가치관이나 생활양식이 비슷해지는 ‘코호트 효과’, 관찰시점에 모든 세대들에게 미치는 시대적 사견이나 배경 등의 ‘시기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는 특정 세대를 이름짓고,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게 까다로운 작업임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는 대학 입시나 취업 등의 사회적 경험을 뜻하는 ‘코호트’가 전혀 다르다. 아직은 한국의 출산율이 일정 이상을 유지하던 시기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는 가장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러야 했다. 반면 출산율이 1점대, 0점대인 상황에서 태어난 Z세대들은 밀레니얼세대에 비해 대학 입시경쟁률이 훨씬 낮았다. 이런 상황을 겪다 보니 두 세대는 자연스레 성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면 취업시장에선 두 세대의 운명이 달라졌다. 이 책임연구원은 “밀레니얼세대들은 Z세대들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오던 시기에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렸기에 사회 진출이 좀 더 수월했다. 반대로 Z세대는 경제적 침체기, 저성장기에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때문에 취업시장의 문도 좁고, 신자유주의 경제가 더 확산된 상황이기 때문에 청년실업을 더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만 봐도 이들을 MZ세대로 묶기엔 무리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MZ세대라는 용어를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인구학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다름을 지적하기에 앞서 미국에서 구분지어진 세대 구분을 그대로 차용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맥락에 맞는 세대 구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 교수는 “미국은 2차 세계대전(1945년 종료) 전후부터 64년생까지를 베이비붐 세대로 규정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까지 겪었기에 베이비붐 세대를 휴전 후인 1955년생부터로 봐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베이비붐 세대가 20년 정도로 꽤 길게 유지되기 때문에 1955∼64년생까지는 베이비붐 1세대, 출산율이 다소 떨어진 1965∼74년생까지를 베이비붐 2세대로 봐야 하는 것도 미국과는 다른 점이다”며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미국의 X세대나 밀레니얼세대와 달리 우리의 그것은 연도가 조금씩 뒤로 밀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82년생 김지영’을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 밀레니얼세대 개념을 처음 소개한 책이 ‘90년생이 온다’다. 미국식 세대 구분에 따르면 82년 김지영과 1990년대생은 같은 밀레니얼세대다. 그런데 우리 1990년생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이 너희와 같은 세대야’라고 하면 그들은 ‘말도 안 된다’고 반문할 것이다. 한국 사회만의 세대 구분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대 구분의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MZ세대라 불리는 이들을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 그 안에도 더욱 세분화해서 보자는 것은 단순히 세대 구분을 다시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MZ세대라는 실재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러운 ‘세대론’으로 도식화·단순화하는 우를 피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도 각 세대가 공통적으로 처한 현실과 고민, 갈등 등을 서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세대 구분에만 그치지 말고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세대를 구별하고 구획하는 것에만 그치면 서로의 고정관념이나 편견만 생산해 서로 배척하는 도구로만 쓰일 수 있다”면서 “세대 구분의 목적은 ‘다름’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세대들은 ‘왜 그럴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기 위해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MZ세대와 같은 범위가 큰 세대를 뭉뚱그려서 바라보는 것보다 좀 더 세대 구분을 세분화, 세밀화해서 그들의 다양한 고민과 현실의 어려움을 짚고, 전 세대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도 “한국 사회가 세대 구분을 서로가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해야 하는데, 세대를 분리하는 것 그 자체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세대 구분이란 게 엄청 모호함에도 굳이 그 작업을 하는 것은 이를 통해 사람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며 “MZ세대 담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나 정치권에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분명히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특성을 단순화하기보다 좀 더 세분화시켜 각자가 처한 현실을 고찰하고, 고민 지점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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