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진영 “여성의 기본권 보장 우선”
반대 진영 “낙태, 헌법상 권리 아니다”

“반세기를 이어져 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경우 연방대법원이 명성에 치명타를 입을 것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진보 3총사’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그리고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이 똘똘 뭉쳐 로 대 웨이드 판결 사수를 외쳤다. 1973년 대법원에서 내려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임신을 원치 않은 여성의 낙태권 보장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대법원의 보수색이 짙어진 가운데 낙태권 보장에 반대하는 진영은 대법원에 소송을 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미 언론들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구두변론을 열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판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임신 15주 이후에는 사실상 낙태를 할 수 없도록 한 미시시피주(州)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진보 진영은 이 법률이 여성의 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에 위배되고 또 이미 확립된 로 대 웨이드 판례에도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무효라는 입장이다. 반면 보수 진영은 미국 헌법이 낙태할 권리를 여성의 기본권으로 인정한 바 없으며 48년 전의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잘못됐다는 주장을 펼치며 해당 법률을 엄호하고 나섰다.
현재 미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9명의 대법관 중 보수 성향이 6명, 진보 성향이 3명으로 보수 절대 우위 구도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필두로 클래런스 토마스, 새뮤얼 얼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그리고 에이미 코니 배럿까지 모두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주의자들이다. 특히 고서치·캐버노·배럿 대법관 3인은 ‘초강경 보수’로 통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다.
이에 맞서는 브라이어·소토마요르·케이건 대법관 3인은 ‘소수파’다. 보수가 결집하면 6대3으로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런데 낙태 문제를 놓고 대법관 6명이 뜻을 한데 모을지는 의문이다.

이날 구두변론 후 워싱턴포스트(WP)는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중 누구도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옹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진보 대법관 3명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적극 옹호한 것과 대조적이다. WP는 “여성의 낙태권 보장이 중대 변화의 기로에 섰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도 같은 근거를 들어 “대법원이 미시시피주의 낙태제한법을 유지하는 데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보수 대법관 6명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완전히 뒤집음으로써 여성의 낙태권을 전면 부정할지, 아니면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는 불가하다는 식으로 로 대 웨이드 판례 일부를 수용할지를 놓고선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일단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 성향이지만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완전히 뒤집는 것에는 크나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의 최고 책임자로서 기존 판례를 존중해야 한다는 압력을 법원 안팎으로부터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로 대 웨이드 판례를 깬다면 후세에 ‘여성 인권을 등한시한 대법원장’으로 남아 두고두고 비난을 살 수 있다는 점도 로버츠 대법원장의 고민 중 하나다.
일각에선 보수 성향이지만 나름 합리적이란 평가를 듣는 고서치 대법관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완전히 뒤집지 않는 선에서 타협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한다. 보수파에 속해 있긴 하나 여성인 배럿 대법관이 막판에 마음을 돌려 여성의 낙태권을 일부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로 앤 웨이드 판결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진보 진영에 힘을 실어줬다. 대법원은 구두변론을 몇 차례 더 연 뒤 내년 6월 말이나 7월 초쯤 판결을 선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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