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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낸 상처… 살고 싶단 절규였다 [그 아이가 보낸 마지막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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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20 06:00:00 수정 : 2021-12-20 18: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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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막을 수 있었던 비극

담임은 현섭이 자해 알고도 부모에 안 알려… 전문상담교사 없는 학교 수두룩
잘 지내는 듯 보이다가도 극단 선택… 어른 기준으로 ‘별거 아닌 이유’ 많아

전문기관 2020년 자해 상담건수만 3만2458건… 최근 4년 새 5배 이상 크게 늘어
자해 시도 청소년 75% 주변에 숨겨… ‘도움 못 받을 것’이란 생각 바꿔야
고(故) 이현섭군이 죽기 전 심적 고통을 호소하며 남긴 쪽지. 현섭군 유족은 세계일보 보도의 취지를 감안해 실명과 사진 공개를 허락했다. 유가족 제공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은 ‘자살 공화국’이다. 특히 최근 청소년들의 자살이 급증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 중 상당수는 죽기 전 주변에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절박한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생활방식이 장기화하면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도 ‘적색등’이 켜졌다. 자살의 동기가 되는 무력감과 절망, 외로움, 고립감 등이 어느 때보다 심화할 수 있어서다. 또 다른 아이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 3회에 걸쳐 청소년 자살의 현실과 정책적 대안 등을 짚어본다.

 

174일. A씨가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의 첫 문장이다. A씨는 지난 6월27일부터 하루하루 날짜를 세고 있다. 아들 현섭이가 태어난 뒤에도 이렇게 날짜를 셌다. 아이는 100일, 500일, 1000일이 지나 17살이 됐다. 엄마 A씨가 “내 삶의 이유”라 말했던 아이다. 20살은, 30살은 어떨까 그려보면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그 미래는 볼 수 없게 됐다. 현섭이는 열일곱 나이에 목숨을 끊었다. 6월27일은 현섭이의 기일이다.

 

현섭이는 강원외고 1학년이었다. 6월 초, 친구들과 오해가 생긴 뒤 SNS에 ‘저격 글’이 올랐다. 소문은 커졌고 따돌림이 생겼다. 엄마는 “친구들과 24시간 생활하는 기숙학교여서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기 2주 전이었다. 현섭이는 기숙사에서 자해를 했다고 한다. 집에선 알 수 없었다. 현섭이와 친분이 있던 학생이 한 교사에게 말했지만, 그는 현섭이 담임이나 집에 알리지 않았다. 그는 훗날 “상처가 안 보였고, 상태도 괜찮은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현섭이는 상처 위에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엄마는 그때가 아이를 구할 수 있던 첫 번째 기회라고 생각한다.

 

6월26일, 현섭이는 담임과 한 시간 정도 상담을 했다. 정기상담 시간이었다. 다른 학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담임이 “자해하니?”라고 물었다. 현섭이는 부인했다. 담임은 “힘든 일 있으면 꼭 말해야 해”라고 덧붙였다. 더 이상 자해 시도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현섭이는 세상을 등졌다.

 

학교에선 휴대전화 사용과 외출이 제한돼 있어 집과 연락을 잘 하지 못했다. 엄마는 학교에 “자해했을 때 왜 알리지 않았냐”고 따졌지만, “119에 실려 갈 정도가 아니면 알리지 않는다”는 믿기 힘든 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힘든 줄 알았으면 같이 상담이라도 받았을 거예요. 어쩌면 현섭이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요.” 아이는 억울하고 부모는 서럽다.

 

정말 막을 수 없는 죽음이었을까. 현섭이는 여러 차례 주변에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던 학교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섭이는 메모에서 “나 진짜 죽고 싶어. 도와줘”라고 적었다.

 

아이들이 죽는다. 미처 손쓸 틈이 없는 죽음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서서히 죽음에 내몰린다. 도와 달라고 하지 못해서, 도와 달라고 할 곳이 없어서, 때로는 도와 달라는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죽는다.

 

19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2021년 서울지역 청소년 위기 실태조사’(8517명 설문)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응답은 24.3%에 달했다. ‘자살 계획을 세운 적 있다’는 응답은 7.9%, ‘자살 시도를 한 적 있다’는 답변은 4.0%나 됐다.

◆아… 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학생의 자해 시도 등 심각한 사안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교사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해주십시오.” 지난 10월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이현섭군 어머니 A씨의 호소다. 자해 시도가 교사들에게까지 알려졌지만,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된 현섭군의 사례는 10대 자살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해에만 300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우리 사회의 대응은 낙제점 수준이다.

◆자해 알려도 무대응… 상담교사도 없는 학교

19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강원도교육청의 감사 결과, 현섭군의 학교에서는 학생 자살 시도 등 위기관리대응 체계 전반에서 문제점이 확인됐다. 현섭군의 담임은 장례가 끝난 뒤 “현섭이가 자해했던 사실을 알았느냐“는 유족의 질문에 “몰랐다”고 했다가 나중에야 “알았다”고 시인했다. 강원도교육청은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두 교사는 학생의 자해 이야기를 듣고 관찰 및 상담을 실시했으나 개인 판단에만 머물렀을 뿐 부모 또는 학교에 통보하거나 위기관리위원회 개최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교육부 매뉴얼상 학교는 자해사건 인지 시 위기관리위원회를 열고 부모에게 알리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라는 단서 조항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현섭군의 학교에는 전문상담 교사마저 없었다. 학교는 올해 2월 전문상담 교사의 계약이 만료되자 생물전공 교사를 채용했다. 강원도교육청은 “위기 학생의 1차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위클래스(학교 내 상담센터)’ 기능이 상실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섭군이 전문 상담을 원했더라도 지원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은 학교장에게 ‘중징계’, 현섭군의 자해 사실을 알았던 교사 2명에게 ‘경징계’ 처분할 것을 학교 법인에 요구했다. 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학생 3명이 출석정지 등의 조치를 받았으며, 2명은 명예훼손과 모욕 등의 형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현섭군의 엄마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자해는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

아이들은 왜 죽음을 생각할까.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살은 성인 자살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청소년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부모의 꾸중, 친구와의 다툼 등 주변 어른들이 봤을 때는 ‘별것 아닌 이유’로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아 공감을 받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죽기 전에 어떻게든 신호를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현섭군 사례에서 보인 자해 시도다. 자해를 한다고 모두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해가 반복되다 보면 ‘내가 죽어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거나, 자해 강도가 강해져 의도치 않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자해를 ‘부분적인 자살’, ‘작은 자살’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10월 발행된 한국상담학회 학술지 ‘상담학연구’ 22권5호에 게재된 논문 ‘비자살적 자해청소년의 자해중단 경험연구’에는 청소년 시기 자해를 반복적으로 했던 18명의 경험이 담겨 있다. 중2부터 6년간 자해를 반복했다는 B(20)씨는 “중독에 가깝다. 힘들면 자해하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런 특성을 지닌 자해는 최근 청소년 사이에 빠르게 확산하는 모습이어서 우려스럽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산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238곳에서 진행된 자해 상담 건수는 2016년 5673건에서 2020년 3만2458건으로 4년 사이에 5배 이상 늘었다. 특히 2018년(2만7976건)에는 전년(8352건)보다 3배 이상 급증했는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10대 연예인이 자신의 자해 경험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자해·자살시도 막으려면 주변 도움·지지 필수

아이들은 왜 도움을 청하지 못할까.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자살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 데 어려움이 많은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죽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으면 공감이나 도움을 받기보다 비난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위기청소년 조사 결과, 자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74.7%는 자해 시도를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절반(49.6%)가량이 ‘알려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의 자해·자살 시도에는 특히 주변의 지지가 중요하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팀장은 “빠른 상담 개입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입은 빠를수록 좋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초기에 발굴하고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도 환경운동가들의 관심사가 아닌 모든 인류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잖아요. 청소년 자살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자살을 터부시하거나 쉬쉬하지 말고, 공론화하고 사회적 담론으로 완성해야 해요. 그래야 죽음을 고민하는 아이들의 사례도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극단적 선택을 한 현섭군의 유골함과 유품이 안치된 납골당에 친구들이 남긴 쪽지가 여럿 붙어 있다. 유가족 제공

◆“자해, 문제행동으로 낙인 안 돼… 가장 먼저 경청 중요”

 

“가장 먼저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해가 아닌 다른 해소 방법을 찾아야 해요.”

 

청소년 상담을 17년 동안 진행해 온 김미정 금천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은 자해를 문제행동이라고 인식하고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말부터 꺼냈다. 청소년에 대한 긍정적 지지와 함께 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과정이 중요한데, 처음부터 나무랄 경우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자해 행동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지만 비난하거나 같이 죽자는 식의 극단적 반응을 보일 경우 남몰래 자해하는 등 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왜 자해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지지와 경청이 필요하다”며 “자해를 반복하면 위급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자해 시도 청소년들은 자해 대신 다른 방법으로 부정적 감정과 생각을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익혀야 한다. 그 방법에는 △대화 △힘든 순간에 그 공간을 벗어나기 △다른 곳으로 주의 돌리기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 떠올리기 △운동 △심호흡 △산책 등이 있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자해가 아닌 방법으로 감정을 안정시키는 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다른 해소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큰 변화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자해 충동이 ‘어떤 순간’ ‘어느 공간’에서 일어나는지를 스스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이 자해를 촉발한 원인을 해결할 근본적인 접근법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지만 자해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담사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 전문가의 개입도 필수다. 김 소장은 “청소년의 자살 시도는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끊어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보듬어주고 고통을 자해가 아닌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승환·구현모·장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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