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당선인, 처벌 강화하는 공약 내놔
입증 못하면 피의자 전환 공포감 커
성폭력 피해자 전반에 부정적 영향
韓, 10년 이하 징역·1500만원 벌금
美·獨, 5년 이하 자유형·벌금형 부과
‘해외보다 처벌 조항 낮지 않아’ 지적

지역의 한 하청업체에서 프로야구 지원 업무를 하던 계약직 A씨는 성희롱과 강요죄 등 혐의로 회사 대표를 고소했다가 역고소당했다. “성희롱 사실이 없는데 A씨가 무고했고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을 했다”는 게 회사 대표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대표 측이 고소한 사건들을 모두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했고, 관할 노동청은 “직장 내 성희롱이 인정된다”며 회사에 권고를 내렸다. 이후 회사는 A씨를 복직시켰지만, 계약만료 기간이 다가오자 계약을 해지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최근 자신의 사연을 알린 A씨는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성희롱 신고 보복으로 이렇게 고소는 물론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했다”며 “나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꼭 법이 바뀌어서 이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알려달라”고 했다. 단체 소속의 윤지영 변호사도 “무고죄 고소나 보복 소송은 승소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을 괴롭힐 목적으로 제기되고 실제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큰 특징”이라며 “무고죄 고소나 보복 청구를 할 경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그 실질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고죄는 이처럼 성범죄 피해자를 위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하면서 이런 부작용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이대남’(20대 남성)을 겨냥해 내놓은 이 공약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고죄 기소 중 유죄는 28.7% 불과… 윤 당선인 측 “선의 피해자 최소화하겠다”
1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7∼2018년 2년간 성폭력을 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1190명 중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례는 28.7%(341명)에 그쳤다. 60.3%(717명)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연도별 무죄율(선고 인원 대비 무죄 비율)을 보면 성폭력 무고죄는 2017년 5.1%, 2018년 7.0%였다. 전체 범죄 무죄율(1심 기준)이 2017년 0.71%, 2018년 0.79%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현저히 높은 수치다. 성폭력 외 무고죄의 무죄율도 6%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입증이 까다로운 무고 사건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연구원 측 설명이다.

윤 당선인은 유독 성범죄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혀왔다. 그는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모든 청년에게 ‘윤석열표 공정’을 약속한다”며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일부 젊은 남성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겨냥한 것이다. 대선 하루 전날이자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8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고죄 처벌 강화’라는 단문 공약을 올렸다. 당선인 측은 “사법 시스템을 악용하는 일부 상습 무고 행위자를 막고,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라며 “당사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사회의 공정을 추구하는 청년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범죄 입증 못하면 무고 피의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공포
하지만 무고죄 처벌 강화가 현실화할 경우 성범죄 신고의 위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오히려 무고 피의자로 몰릴 수 있다는 부담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대검찰청은 2018년 성폭력 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때까지 무고 수사를 중단하도록 수사매뉴얼을 개정했다. 대법원도 2019년 ‘성폭력 신고 이후 불기소나 무죄판결이 났다고 해도 신고 내용을 허위로 단정해 무고죄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했다가 무고죄로 수사를 받는 사례가 소수에 불과하더라도 그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크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여성폭력 검찰통계 분석: 디지털 성폭력범죄, 성폭력 무고죄를 중심으로’에서 연구진은 “자신의 피해가 불신당할 것을 우려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무고 혐의를 받을 가능성이나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죄 선고까지 받을 가능성이라는 위협은 그간 말하지 못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한 ‘미투’ 운동의 기여를 위축한다”며 “무고하게 무고 혐의를 받은 성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미국·독일 등은 ‘5년 이하’… ‘10년 이하’ 한국 무고죄 처벌조항 낮지 않다
현행 형법이 정한 무고죄 처벌 조항이 해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약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형법 156조는 다른 사람이 형사나 징계 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신고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윤 당선인은 이를 개정해 강력범죄에 대한 무고죄 형량을 3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상향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무고죄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연방법과 독일의 경우 무고죄에 대해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을 부과하게 돼 있다. 프랑스는 5년 이하의 구금형이나 4만5000유로(약 6000만원)의 벌금형, 영국은 6개월 이하의 즉결심판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2018년 무고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대해 박형철 당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도 “우리나라의 무고죄 법정형은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위증죄나 다른 강력범죄에 비해 낮지 않은 상황이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오히려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소가 되더라도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이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량도 징역 1년 안팎이 대부분이고, 초범인 경우 집행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형량을 높이거나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적절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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