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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의동행] 애도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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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12 23:38:19 수정 : 2022-04-12 23: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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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이 생명의 계절이 잔인한 달이라니. 하긴 내게도 4월은 깊은 상실과 슬픔의 시간들이다. 두 살 터울의 언니와 어머니가 이 4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연두물이 번지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간에, 그 환한 시간에, 꽃비의 애도를 받으며 이승을 떠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계절에 이별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햇수로 4년. 어머니는 그동안 자주 꿈속으로 찾아왔다. 어머니는 생전에 그러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꾸만 아버지를 추억하는 나를 보고 너무 슬퍼하면 떠날 사람이 못 떠나니 그만 잊으라고. 어머니도 그러셨을까.

어머니는 갑자기 이승을 떠나셨다. 오래 앓아온 병이 있긴 했지만 그 병이 사인은 아니었다. 엉치뼈를 다쳐 몇 달을 누워 지내셔야 했던 어머니는 급기야 장폐색이 왔고 급하게 수술이 결정됐다. 한데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어머니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강력한 진통제가 들어있는 주사기를 꽂고 계셨고 그 기운에 깊은 잠을 주무셨다.

그때 나는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어머니를 흔들어 깨워 이승에서의 시간을 정리할 기회를 드렸어야 했다. 자식들과 차분히 눈을 맞추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렇게 이후의 시간들을 기약했어야 했다. 한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당신 혼자 맞이해야 할 죽음이 두려울까봐 그냥 그렇게, 잠자는 와중에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배려이자 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폭력이었다. 아마 어머니는 당신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서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언제든 내 꿈속으로 찾아와요. 그러면 내가 거기 있을게요.’

그때, 왜 그랬을까.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게 이승에서의 마지막이에요.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고 떠나요. 그리고 나중에 우리 만나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고. 나는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오랫동안 방황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너무 가혹하고 잔인했다. 어머니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내 임의대로 처리해버린 것이다. 그 마지막 시간, 당신 생의 단대목을 어머니는 당신의 의지대로, 자주적으로 매듭짓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봉인당하고 말았다. 그보다 더 큰 불효가 어디 있을까. 내 방황의 이유였다. 그 방황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건강은 나빠졌고, 일도 엽렵하게 할 수 없었다. 꿈은 점차 악몽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였을까. 최근 들어 나타나지 않으시다가 어젯밤 오랜만에 찾아오셨다. 그 꿈에서라도 맛있는 밥 한 그릇, 따듯하게 차려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돌아오는 기일에는 어머니에게 다녀와야겠다. 이 눈부신 4월, 나처럼 그리운 이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부디 그들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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