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도 도입 필요하다 목소리 나오지만
부품 고가, 수리키트는 거대…수리법 난해
AS센터 이용하는 것과 가격 비슷해 ‘한계’
한국에서도 아이폰·갤럭시 스마트폰을 스스로 고칠 수 있는 날이 올까.
미국에서는 애플·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자가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소비자가 수리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역시 지난해 3월 수리권 보장법을 통과시키는 등 전 세계적으로 휴대폰, 전자제품 등을 스스로 ‘수리할 권리’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수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전자·가전제품의 소비자 수리권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동안 제조사가 스마트폰 수리권을 독점하면서 소비자의 권리가 크게 축소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수리비 자체가 비싸고 신제품 가격과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리권을 독점하는 것은 제조사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라는 시각도 많았다. 제조사들은 안전 문제나, 지식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은 수리를 통해 제품 사용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판매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가 수리를 막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제조사들이 신제품을 사게 하려고 고의로 제품 성능을 저하시킨다는 의혹도 나오면서 수리할 권리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직접 수리하고 있을까?
◆애플 정식 부품, 자가 수리 도구 제공 “겨우 4000원 절약?”
애플은 지난 4월부터 미국 내에서 아이폰12와 13, 아이폰 SE 3세대 제품의 핵심 부품을 판매하고 수리용 도구를 대여하는 ‘셀프서비스 리페어’를 시행하고 있다. 애플 자가 수리 부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액정, 베터리, 카메라 등 200여개의 부품을 살 수 있다. 또한 고장 난 기기 일련번호를 입력하면 수리 설명서와 필요한 부품정보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부품을 주문하는 것과 공식 수리 센터에 수리를 맡기는 것과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아이폰 12 미니의 액정을 교체할 경우 온라인 몰에서 액정을 사면 225.96달러(약 28만7000원)인데 서비스센터에서 수리하는 가격은 229달러(약 29만1600원)다. 자가 수리하는 비용이 4000원 정도 더 싼 셈이다. 여기에 수리용 장비를 대여하거나 다른 부품이 추가된다면 서비스센터 수리비용보다 비싸질 수 있고, 오히려 수리 중 실수로 제품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실제로 자가 수리를 해본 사람들은 그 과정이 쉽지 않다고 증언하고 있다. 우선 수리를 하려면 애플에서 제공하는 수리용 장비를 대여해야 하는데 대여 비용만 1주일에 49달러(약 6만2000원)다. 장비를 주문하면 드라이버, 플라이어 등 간단한 도구만 들어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약 36㎏에 달하는 두 개의 ‘펠리컨 케이스’가 배송된다. 이 안에는 는 실제 애플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사용하는 디스플레이(액정) 흡착기, 포켓 등이 들어있는데 이를 이용해 액정이나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애플은 자가 수리 중 문의사항이 생겨도 전화 등을 통해 별도 기술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수리 방법은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셈이다.
◆삼성전자도 8월부터 부품, 매뉴얼 제공 “아이폰보다 어려워”
삼성전자도 8월부터 미국에서 ‘갤럭시’ 스마트폰, 태블릿PC를 대상으로 순정 수리 부품을 판매하고 수리를 위한 매뉴얼 제공을 시작했다. 고장 난 기기를 서비스센터에 맡기는 대신 IT 기기의 수리 정보를 제공하는 아이픽스잇(iFixit)에 직접 부품을 구입해 고칠 수 있게 된 것이다.
8일 아이픽스잇에 따르면 삼성 갤럭시 S21 울트라 USB-C 충전포트 교체하는 어셈블리 키트는 66달러 99센트(8만7400원), 화면 및 배터리를 교체하는 키트는 239달러 99센트(31만3100원)에 살 수 있다. 키트에는 해당 부품은 물론, 수리를 위한 도구, 구 부품을 반송하기 위한 무료 반품 라벨 등이 함께 들어있다. 고객은 라벨을 붙여 쓸모없어진 부품은 삼성전자에 다시 배송하면 된다.
그러나 갤럭시의 경우 아이폰보다 자가 수리하기 더욱 까다롭다는 분석이 많다. 아이픽스잇이 평가한 스마트폰의 수리 용이성 점수에서 아이폰 12, 13 등의 수리 용이성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인데 비해 갤럭시 노트20 울트라, 갤럭시 S20 울트라 등은 3점, 갤럭시 Z 폴립, 갤럭시 폴드는 2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삼성전자가 제공한 갤럭시S20 화면 조립 분해 과정은 41단계로 이뤄져 있다”며 “삼성전자가 사용자들에게 수리를 허용할 의지가 있다면 애초에 수리하기 쉽도록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 중립을 위한 수리할 권리
환경 측면에서도 ‘수리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유럽환경국(EEB)은 유럽 내 모든 스마트폰의 평균 수명을 3년에서 4년으로 1년 연장하면 2030년까지 연 210만t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는 1년 동안 100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
특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과정보다 생산되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EB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사용 과정에서 28%, 생산·유통·폐기 과정에서 72%의 지구온난화지수 요인이 발생한다.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EU는 ‘순환경제행동계획’을 수립하고 회원국들에 전자제품 수명을 연장하고 손쉬운 수리가 가능하게 제조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환경에 도움이 되거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은 살펴본 바와 같이 아직 살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자가 수리가 아니라 사설 수리점을 이용하는 경우라도 저가에 부품이 공급되지 않으면 실효성을 갖기 힘든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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