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20년 만에 사극 출연해 주목
조선 ‘왕실 교육법’ 소재 신선함 더해
‘물귀원주’ 자막 中식 표기법 사용 논란
임금 침전에 淸 ‘태화전’ 편액 거는 등
“역사적 사실에 바탕…시청자 혼동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CJ ENM “태화는 신라·고려 때 사용한 단어…중국 참고 아냐”
조선시대 왕의 뒤를 잇는 자리, 왕세자는 어떻게 정했을까. 단순히 적장자 원칙에 따라 맏아들(큰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줬을까. 만약 맏아들이 똑똑하지 않거나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이상이 있다면 그때도 적장자 원칙을 지켰을까. 조선왕조 500년 태조 이성계부터 순조까지 조선을 다스린 왕은 27명. 그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왕이 될 운명’이었을까.

왕은 한 국가를 이끌고 온 백성을 보살펴야 하기에 그 누구보다 최고가 돼야 했다. 그러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도 적지 않을 터. 조선 왕실은 단 한 사람을 위해 아주 특별한 교육을 쏟았다. 조선시대 궁궐 안 오직 왕세자만을 위한 1% 교육법은 무엇일까. 지난 15일부터 방송 중인 tvN 주말드라마 ‘슈룹’은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그 답을 극적 상상력과 함께 보여주는 드라마다.
골격은 조선시대 왕 이호(최원영)의 정실이자 중전인 임화령이 대비 조씨(김해숙)와 후궁들의 견제와 방해를 견뎌내며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궁중 분투기다. 특히 김혜수가 20년 만에 사극 드라마로 시청자를 만난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김혜수는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1987년 KBS2 ‘사모곡’, 1998년 KBS1 ‘춘향전’ 그리고 연기 대상을 선사했던 2002년 KBS2 ‘장희빈’까지 사극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관상’(2013)도 마찬가지. 그러다 보니 ‘슈룹’은 제작 단계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김혜수는 그런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15일 첫 회부터 23일 4회까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그만의 중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픈 왕세자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김혜수에게서 애절한 모성애를, 왕자들 교육을 위해 직접 교재를 만드는 모습에서는 어머니의 뜨거운 교육열이 느껴진다. 대비의 계략과 후궁들의 견제에 대응하는 모습에서는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장부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김혜수는 드라마 내내 섬세하고도 압도적인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데뷔 36년 차 배우인 김혜수는 2013년 한 인터뷰를 통해 “언제든 사극에 출연하기 위해 귀를 뚫지 않고 기다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사극에 진심인 김혜수는 지난 7일 진행된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도 “오랜만에 사극으로 돌아왔다. 데뷔했을 때 첫 연속극이 사극이다. 중간에 ‘장희빈’을 했고 그다음 영화 ‘관상’에 출연했다”며 “‘슈룹’은 모든 게 신선했다. 이 작품은 처음 봤을 때부터 기대를 가지고 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내용에서도 ‘슈룹’은 지금까지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왕실 교육법을 다룬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수명 연장을 위해 맹물을 100번 끓인 물을 마시고, 인시(새벽 3∼5시)와 묘시(새벽 5∼7시)에는 두뇌 활성화를 위해 소금물에 150초 이상 얼굴 전체를 담그고 버티는 등 특유의 왕실 교육법을 보여줬다. ‘당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공부 중 단것을 먹는 요즘과 같이 조청을 먹던 당시 모습도 인상적이다. 왕세자만이 아니라 왕자들도 이러한 특유의 비책을 각자 어머니(후궁)의 강요로 해야 했다. 특히 지금의 왕 이호를 만든 대비가 자신의 교육법을 담은 책을 후궁들에게 주면서 교육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이러한 왕실 훈육법은 드라마 속 이야기이지만 온전히 작가 상상이 아니다. 실제로도 비슷한 비책이 쓰였다. 최태성 역사 강사는 “실제 조선 왕실에선 공부를 다 마친 왕세자를 위해 옻칠한 목욕통에 소금물을 넣어 목욕을 시키면서 피로를 풀어줬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드라마는 조선시대 왕세자와 왕자의 왕실 교육법과 중전과 후궁 사이 교육열을 안방극장에 소개하고 있다. 색다른 소재에 김혜수를 비롯해 김해숙, 최원영, 김의성, 장현성, 서이숙 등 연기파 배우가 대거 출연해 드라마 깊이를 더하고 있다. 다만 사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역사 고증에 민감한데도 드라마 초반 잦은 실수와 지나친 설정으로 논란이 인 바 있다.

지난 16일 방송된 2회에서는 ‘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닌 ‘물귀원주’가 자막으로 나왔는데, 한자 ‘物歸原主’ 대신 중국어 표기법인 ‘物归原主’로 적혀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자, tvN은 부랴부랴 자막을 수정해야 했다. 또 중전이 임금의 침전을 찾는 장면에서 ‘태화전’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 편액을 임금 침전에 걸어둔 것이 발견돼 논란이 됐다. 태화전은 청나라 당시 자금성 정전의 이름으로, 조선에서는 쓰지 않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요즘 사극이 여성 중심으로 많이 이동하고 있는데, 여기에 교육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며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모든 어머니의 교육열을 자극하며, 대비와 중전의 대결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을 담아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 역사와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과 허구) 구분을 잘해서 시청자들이 혼동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에 대해 CJ ENM측은 “물귀원주 자막 실수는 시청자의 지적 덕분에 빠르게 바로 잡을 수 있었다”라며 “태화전의 ‘태화’는 신라시대 연호, 고려시대 학당 등 유교문화권에서 좋은 뜻으로 널리 사용되던 단어로, 중국식을 참고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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