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살해 '존속 살인'과 달리 비속 살인은 일반 살인 사건 취급
전문가 "'자식은 부모 소유물' 인식 시대착오적…가중 처벌 필요"

경기 광명시의 아파트에서 세 모자가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은 피해자들의 남편이자 아빠인 40대가 벌인 소행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비속 살인'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처벌 강화 논의는 수년째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26일 경기 광명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된 A씨는 전날 오후 8시를 전후로 40대 아내와 10대 아들 둘을 자택에서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범행 후 집 밖으로 나가 범행 당시 입었던 셔츠와 청바지를 벗어 숨긴 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A씨는 "외출하고 돌아오니 아이들이 죽어있다"고 119에 신고했다.

A씨는 체포된 뒤 범행을 자백하면서 "최근 아내와 이혼 문제 등으로 자주 다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의 비정한 범행으로 인해 어린아이들까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의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해당 언론보도 댓글 창에는 "애들이 무슨 죄냐", "어떻게 어린 자식들을 죽이고 태연하게 신고를 하느냐"는 등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폭력에 저항할 힘이 부족한 어린이들이 부모에 의해 폭행당하거나 숨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자녀에 대한 강력범죄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은 들끓고 있지만 사회적 논의는 답보상태다.
형법 제250조 1항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항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1항은 살인죄, 2항은 존속살해죄에 해당한다.

현행법은 상해·폭행·유기·학대·체포·감금·협박 등 거의 모든 종류의 강력범죄에 대해 존속 대상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조항을 따로 두고 있다. 부모나 조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려는 취지다.
반면 자녀, 즉 비속에 대한 범행을 가중처벌하는 규정은 형법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가 있지만, 이는 오히려 일반 살인죄보다 형량이 낮다.
자녀 살해는 별도 가중처벌 규정 없이 일반 살인사건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해마다 얼마나 발생하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2016년 신원영(당시 7세) 군 사건, 2017년 고준희(당시5세) 양 사건 등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2018년 비속 살인죄의 형량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후 인수위원회에서도 비속 살해를 존속 살해와 마찬가지로 가중처벌하는 안이 법무부 업무보고에 포함됐지만, 아직 추가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우리 사회는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관념의 영향을 받아 존속 범행을 가중처벌하는 반면, 비속 대상 범행의 경우에는 별도의 가중 형량이 붙지 않는다"며 "이는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기방어 능력이 약한 어린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범행 등은 상당히 죄질이 나쁜데, 이 같은 비속 범행에 대해서라도 가중 처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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