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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길거리 춤 아니다… 이젠 ‘금빛 비상’ 꿈꾼다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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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17 18:54:42 수정 : 2022-12-17 20: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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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서 스포츠로… 올림픽 종목 ‘브레이킹’

골목서 시작된 춤, 대중문화로 확산
MC·DJ·그라피티 함께 힙합 4대 요소

IOC, 2024년 프랑스 정식종목 결정
비보이·비걸 총 32명 ‘금메달’ 도전

‘K 브레이킹’ 美 이어 세계랭킹 2위
2023년 亞게임 출전… 올림픽 도전도

지난달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브레이킹 K 파이널 무대. 대한민국 최고 춤꾼을 선발하는 이번 대회에서 비보이 ‘킬(Kill·박인수)’이 신나는 비트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상대 ‘돌(Dol·박진형)’은 킬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요청했지만 킬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돌은 머쓱한 듯 무대를 한 바퀴 돌더니 바닥에 누워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킬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돌을 한동안 바라봤고, 사회자는 ‘렛츠고’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제 킬 차례. 킬은 상대 무대가 지겨웠다는 듯 하품하는 시늉을 하더니 과격한 움직임으로 관객을 열광케 했다. 킬이 물구나무를 서자 티셔츠 사이로 울퉁불퉁한 복근도 살짝 드러났다. 이 둘은 언제 경쟁을 했었냐는 듯 서로를 껴안아 격려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날 킬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대회에서 챔피언 자리에 오른 ‘윙(Wing·김헌우)’과 함께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큰 이변이 없다면 킬과 윙은 내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브레이킹 종목에 출전해 메달을 노리게 될 전망이다. 나아가 이들은 2024년 열리는 프랑스 파리 올림픽 브레이킹 종목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숱한 도전자를 물리쳐야 한다.

 

브레이크 댄스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메달을 걸었다. IOC는 지난해 12월 집행위원회를 열고 브레이킹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길거리 문화였던 브레이킹

 

브레이킹이란 랩을 하는 MC와 음악을 재생하는 DJ, 벽화 등 낙서를 의미하는 그라피티와 함께 힙합의 4대 요소다. 힙합과 마찬가지로 브레이킹 역시 길거리 문화에서 출발했다. 20세기 이후 순수무용이 아닌 대중문화에 기반을 둔 춤이 퍼지기 시작했고, 클럽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동작이 만들어지면서 브레이킹이 완성됐다. 사단법인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KFD)에 따르면 브레이킹이 태동한 건 1970년 초반부터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파티가 열리면 DJ 쿨 허크(Kool Herc)는 음악에서 가사 없이 춤추기 좋고 신나는 구간만 이어 재생했다. 댄서들은 이 부분을 ‘브레이크 구간’이라고 칭하며 여기에 맞춰 춤을 췄다. 이 음악에 춤을 추는 행위를 브레이크 댄스라고 불렀다. 브레이크 댄스를 즐기는 남성에게는 ‘비보이’, 여성에게는 ‘비걸’이라는 이름도 따라왔다. 이후 브레이킹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즐기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비보이들끼리 실력을 겨루거나 팀을 이뤄 기량을 뽐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스포츠가 된 브레이킹

 

문화였던 브레이킹은 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브레이킹은 201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유스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시 브레이킹 무대를 보기 위해 3만명에 달하는 젊은 관중이 몰렸다. 마침 새로운 세대를 위한 콘텐츠가 필요했던 IOC는 브레이킹 정식 종목 채택을 논의했다. 이 결과 파리 올림픽 브레이킹에는 비보이 16명과 비걸 16명이 메달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금메달은 비보이와 비걸에게 하나씩 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출전권은 내년 열릴 세계선수권대회와 대륙별 국제종합대회, 또 올림픽 퀄리파잉(자격부여) 시리즈까지 3개 대회에 배분된다.

 

IOC는 비보이와 비걸이 맞대결을 펼치는 ‘배틀’ 문화를 올림픽 종목으로 도입했다. 두 선수는 차례로 DJ가 재생하는 음악에 맞춰 라운드별 대결을 펼치고 홀수로 구성된 심판단이 퍼포먼스를 채점해 승자를 가리기로 했다. 공연은 레드 사이드가 공연을 마친 뒤 블루 사이드에서 반격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라운드별 퍼포먼스 시간은 1분 안팎이다. 선수들에게 음악은 사전 공지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브레이킹 수준은 메달을 기대할 정도다. 비보이랭킹즈에 따르면 브레이킹 K 시리즈 파이널에서 우승한 윙은 비보이 랭킹 2위에, 킬은 22위에 올라있다. 우리나라 브레이킹은 세계 2위로 평가받는다. 브레이킹 종주국인 미국이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일본과 캐나다, 러시아가 우리나라 뒤에서 춤춘다.

 

◆우려와 기대 섞인 브레이킹

 

일각에서는 즐기는 브레이킹 문화를 경쟁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고 지적한다. 브레이킹을 수치화하면 춤이 가진 자유로움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판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점도 우려스럽다. 심판은 비보이 혹은 비걸의 기술 난도와 다양성, 또 음악 해석능력, 또 얼마나 개성 있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는지를 볼 뿐 평가를 위한 객관적인 지표는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KFD 관계자는 “얼마나 공정하고 권위 있는 심판이 참가하는지가 대회의 질을 판단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판정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있지만 심판을 존중하는 것 자체가 브레이킹이 가진 문화기 때문에 대부분 선수는 판정을 수긍한다”고 설명했다.

◆“고난도 기술 익혔을 때의 쾌감, 말로 표현 못해”

 

“한 동작을 연마하는 데 1년 이상 걸리기도 해요. 하지만 그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는 기분이 들 때 쾌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죠.”

 

브레이킹 K 파이널을 통해 국가대표에 선발된 비보이 킬(Kill) 박인수(30)와 비걸 프레시벨라(Fresh Bella) 전지예(23·사진)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브레이킹 매력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비트에 맞춰 선보이는 고난도 기술을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소화할 때 비로소 브레이킹 매력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전지예는 “기술 하나를 제대로 팠을 때 오는 성취감이 매력”이라며 “오랜 시간 연습했어도 끝내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동작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인수 역시 “무대에서 연습한 동작을 제대로 보여줬을 때, 또 그 영상을 돌려보고 내가 봐도 꽂혔다는 느낌이 들 때만큼 기분 좋은 순간도 없다”고 소개했다.

 

전지예는 처음부터 브레이킹에 빠진 건 아니었다. 전지예는 “피겨를 하다가 아이돌을 꿈꾸면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며 “여성스러운 춤을 추고 싶었는데 어느 날 옆에 비걸 언니가 하는 동작을 따라 해보니 주변에서 재능이 있다고 얘기해 줘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킬 박인수가 지난달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브레이킹 K 파이널에서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KFD 제공

영화 ‘허니’를 보고 브레이킹에 빠진 박인수는 비보잉을 배워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는 “중학교에 진학해 힙합부 가입을 희망했지만 할 줄 아는 거라곤 물구나무서는 것뿐이었다”며 “그 당시 윈드밀이나 토마스를 하는 친구들을 보고 기가 죽어서 오디션도 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 일이 후회됐던 박인수는 울산 동구 청소년문화회관의 한 브레이킹 팀을 찾아갔다. “무작정 ‘배우고 싶다’고 부탁하자 리더로 보였던 형은 ‘하는 거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물구나무만 서다 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박인수는 “3일 내내 혼자 물구나무만 서는 모습을 보고 팀에서 받아줘 본격적으로 브레이킹을 배웠다”고 돌아봤다.

 

집안에선 반기지 않았다. 낯선 브레이킹을 가족이 좋아할 리 없었다. 하지만 두 브레이커는 태극마크를 달 정도로 출중한 실력으로 부모님에게 인정받았다. 전지예는 “부모님께서 브레이킹하면 다친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며 “2년 연속 국가대표 발탁이 되니 이제 무척 자랑스러워 해주신다”고 웃었다. 부모님께 브레이킹을 한다고 말조차 못 했던 박인수는 “어느 날 한 신문이 내가 춤추는 모습을 보도했고, 부모님께서 그 기사를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며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2012년 춤으로 대통령상까지 받고 대학까지 진학하고 나니 부모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소개했다.

 

국내 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이들의 시선은 세계 무대를 향해 있다. 박인수는 “체어라는 기술에 파워무브를 융화한 춤은 오직 나밖에 못 한다”며 “세계 무대에서도 자신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전지예 역시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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