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소란의시읽는마음] 밤 산책

관련이슈 박소란의 시 읽는 마음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3-02-20 23:48:29 수정 : 2023-02-20 23:48:29

인쇄 메일 url 공유 - +

조해주

저쪽으로 가 볼까

 

그는 이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

 

이파리를

 

서로의 이마에 번갈아 붙여 가며

나와 그는 나무 아래를 걸어간다

얼마 전 소도시의 밤길을 걸었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별이 제법 촘촘한 하늘을 보고는 새삼 깨달았다. 그렇지, 빛은 어두울 때 비로소 ‘빛나는’ 것. 밤에 하는 산책이 내 각별한 취미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빛 때문이다. 어둑한 골목을 걷다 보면 불이 환한 저마다의 창, 창들을 만나게 되고 거기 스민 순도 높은 온기에 넋을 잃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면 다름 아닌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이마로 옮겨 온 또 다른 모양의 빛을 발견할 수도 있을까. 생활의 사소한 정황, 작은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이 시인은 그 빛의 생김을 “얇게 포 뜬”이라고 표현했다. 잘게 썰린 빛의 조각이 아직 살아 파닥이는 낱낱의 잎처럼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시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보며 나란히 한 방향으로 오래 걸어갈 것 같다. 참 다행이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봄이 임박해 있다.


박소란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츄 '상큼 하트'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조이현 '청순 매력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