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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신질환자 느는데… 병상 부족에 입원 ‘바늘구멍’

입력 : 2023-03-05 17:26:57 수정 : 2023-03-05 19: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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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계기 과밀병상 해소 추진
이격거리 등 영향 4년새 3000개 ↓
환자 보호자들 ‘병원 찾아 삼만리’
전문가 “진료 수가 문제 해결 시급”

전남 완도에 사는 김경연(60)씨는 지난 2일 딸 김모(34)씨를 데리고 나주로 향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보이는 딸을 입원시킬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서다. 완도의 병원은 물론이고 근교 해남과 지역 내 대도시인 광주광역시 병원은 “병상이 없다”고 통보해왔다. 모녀는 수소문 끝에 나주에 있는 병원에서 입원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차로 2시간을 달려갔다. 김경연씨는 “정신장애인들이 입원할 곳이 없다”며 “(병상 부족 문제는)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영역이므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울고불고 해봐도 해결을 안 해준다”고 토로했다.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는 환자가 해마다 늘고 있는 반면 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부터 이어져온 정신과 진료 수가 문제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정신병원의 병상 간 이격거리가 늘면서 감소폭이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병상간 이격거리 1.5m…쾌적한 환경 만들었지만 병상 숫자 줄여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정신병원의 입원 병상 수는 7만3023개로 집계됐다. 2018년 기록한 7만6439개와 비교하면 3000여개(4%) 감소한 수치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전부터 정신병원들이 외래로 전환하고 병상을 줄여온 데다 2021년 3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이격거리 기준이 생겨 병상을 더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 대비 2021년 정신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중증 정신질환자 수는 59만9956명에서 2021년 65만1813명으로 약 5만2000명(9%) 증가했다. 또 정신질환으로 국내 병원을 방문한 환자 수는 코로나19 국내 발생 이전인 2019년 362만7452명에서 발생 2년 차인 2021년에는 405만8855명으로 11.9% 늘었다. 이처럼 정신질환자 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병상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앞서 2020년 2월 경북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폐쇄병동의 병상 과밀 문제가 드러나자 복지부는 정신병원 입원실당 허가 병상을 10개에서 6개 이하로 줄이고 병상 간 이격거리도 1.5m 이상 두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한 바 있다. 신규 병원은 지난해 3월, 기존 병원은 지난 1월부터 해당 규칙을 적용받고 있다. 인권 보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지만 병상 숫자가 줄면서 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만들어진 셈이다.

 

◆자신·타인 위해 우려 있는데…병상 없어 입원치료 불가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입원할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3∼4시간은 기본이고, 20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며 “그것도 병실을 구해서 입원을 했다면 운이 좋은 경우다. 경찰이 끝내 병원을 찾지 못하면 환자를 가족에게 돌려보낸다”고 전했다. 경찰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일하는 경찰은 “코로나19 이후 입원이 더 어려워졌다. 최근 코로나19가 종식되어가지만 그렇다고 입원이 쉬워진 건 아니”라면서 “정신과를 갖춘 병원을 하나하나 전화해서 입원이 가능한지 확인해보는데, 병상이 없다고 해서 경기도에 있는 병원까지 알아보곤 한다”며 한숨지었다. 실제로 2021년 기준 경찰의 정신질환자 응급 입원 신청이 반려된 경우는 530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지적된 정신과 진료 수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과 교수는 “정신과 급여 환자는 일당 입원 진료비가 5∼7만원으로, 다른 과 대비 30∼40% 수준에 그친다. 대학병원들이 적자가 난다며 병상을 없애고 있는데,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입원하지 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수가를 올려야 한다. 일본에서도 같은 문제를 겪었는데, 병실입원료를 2배 정도 올리니 병상이 늘어났다”고 조언했다.

 

정신과 진료 수가 개선에 있어 장기입원과 응급환자의 수가를 분리해 책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과 교수는 “정신응급환자는 피를 흘리고 뼈가 부러진 중증 부상자와 비슷한 응급환자”라며 “예전에는 경찰·소방이 출동하지 않아서 문제였는데 지금은 출동해도 입원시키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다. 경찰이 가족한테 돌려보냈다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지금은 병원에 장기입원 중인 정신과 환자가 많은데, 선진국처럼 응급이나 급성기 환자가 짧게 입원해서 강도 높은 치료를 받은 뒤 지역사회로 퇴원하는 방향이 이상적”이라면서 “정부에서 응급이나 급성기 정신질환 진료 수가를 개선하고, 퇴원 후에는 외래로 본인이 알아서 병원에 오거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사례관리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조희연·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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