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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된 욕망에 도둑질·사기… “OO옷 줄게” 청소년에 ‘몹쓸 짓’도 [심층기획-명품에 빠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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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07 06:00:00 수정 : 2023-03-07 00: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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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명품공화국의 씁쓸한 자화상

명품에 눈멀어 범죄 유혹 쉽게 빠져
회사 디자인실 직원 명품 샘플 슬쩍
1년간 2억7000만원어치 옷 빼돌려
“대리 구매” “싸게 판다” 사기도 판쳐

명품 미끼 미성년자들 범죄 표적으로
허영심에 친구들끼리 갈취·따돌림도
전문가 “젊은 세대 자기 과시욕 강해
개성표출 방법 명품 말고도 다양” 지적
#. 지난 1월28일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패스트푸드점. 30대 남성 A씨는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명품시계를 살 것처럼 대화를 나눈 40대 남성 B씨와 만났다. 시계는 1200만원 상당이었다. 잠시 B씨가 음료수를 가지러 간 사이, A씨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시계를 훔쳐 달아났다. 그는 멀리 가지 못해 B씨에게 잡혔고, 주먹을 휘두르며 도망가려 안간힘을 썼다. B씨가 끝까지 놓아주지 않자, A씨는 훔친 시계를 놓고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지난달 8일 A씨의 주거지인 경기도 평택에서 그를 검거했다.

 

글로벌 명품시장의 ‘큰손’이 된 한국의 ‘명품 병(病)’이 낳은 그림자가 사회 곳곳에 드리워지고 있다. 구매력이 없는 미성년자 사이에서는 명품 열풍이 범죄 유혹으로 이어지고, 치솟는 명품 인기에 범죄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명품공화국의 부끄러운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명품 앓이에 끊이지 않는 범죄

 

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명품을 향한 욕구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잖다. 서울 강남구 소재 한 회사의 디자인실에서 근무하던 C씨는 2020년 10월부터 샘플실에 보관된 명품 브랜드 원피스를 몰래 집으로 가져갔다. 2021년 11월까지 그는 시가 합계 2억7768만원어치의 명품 의류 165점을 절취했다. C씨는 이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년 6개월형의 징역을 선고받고 집행유예 3년 처분을 받았다.

 

주거침입이 결합한 특수절도 범죄도 있다. 2021년 10월 타인의 집을 무단 침입해 고가의 시계를 훔친 피의자가 잡혔다. D씨는 서울 강남구 피해자의 집 현관문 앞 천장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몰래 설치하는 수법으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피해자가 외출한 사이 무단으로 들어가 시가 5200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몰래 가지고 나왔다가 결국 꼬리를 밟히기도 했다.

 

명품의 희소성을 악용한 범죄도 있다. 2020년 E씨는 지인들에게 명품 브랜드 시계를 대신 구해주겠다며 지인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빼앗았다. 그는 자신이 명품시계 브랜드 소속 팀장과 친분이 있다며 지인에게 “요즘 구하기 힘든 시계를 대신 사주겠다”면서 10차례에 걸쳐 약 9000만원을 뜯어냈다. 2021년에는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에게 명품시계를 구해주겠다며 시계 대리구매 명목으로 4600여만원을 가로챘다. 서울서부지법은 사기, 위조공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E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내 ‘명품 거래 사기’도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도 명품 브랜드 제품이 중고로 거래되고 있다. 2021년에는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명품 가방을 싸게 판매한다고 속여 83명으로부터 1억원 상당을 빼앗은 일당이 검거된 바 있다.

 

◆‘허영사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청소년

 

각종 유럽 명품 브랜드가 방탄소년단(BTS)의 지민(디올)·슈가(발렌티노), 블랙핑크의 지수(디올)·제니(샤넬)·로제(생로랑)·리사(셀린) 등 케이팝(K-pop) 스타들과 협업을 확대하면서 브랜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특히 유명 한국 연예인이 명품 브랜드 홍보 모델을 맡으면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명품 열풍이 한창이다.

이 같은 현상의 나비효과는 명품을 미끼로 한 미성년자 대상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명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청소년에게 ‘명품 의류를 준다’는 식으로 접근해 범죄의 표적으로 삼은 사례도 있다. 2021년 대구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사성행위를 해주면 명품 옷을 주겠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한 C씨가 덜미를 잡혔다. 그는 아동·청소년에 금품 등을 제공하고 성을 매수해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미성년자가 또래를 대상으로 한 명품 관련 범죄도 발생했다.

 

2021년 서울의 한 고등학생은 명품지갑으로 인해 학급 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구입한 명품지갑을 본 친구는 “그렇게 돈이 많으면 용돈을 달라” 등 압박했고 이에 응하지 않은 학생을 괴롭히고 따돌렸다. “지갑을 팔아서 맛있는 것 먹고 화해하자”며 학생의 명품지갑을 중고거래 사이트에 판매한 뒤 대금을 빼앗기도 했다. 이처럼 ‘허영사치심’을 채우기 위한 범죄는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허영사치심을 동기로 한 미성년범죄는 2019년 42건에서 2020년 80건, 2021년 81건으로 증가했다. 2019년에 비해 2021년 범죄건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명품 병이 범죄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명품에 열광하는 사회 분위기에 우려를 표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하는 과시욕이 강해진다”며 “명품은 자기 현실에 맞게 사용해야 하는데 자기 현실에 맞지 않음에도 (명품을 사는 분위기를) 좇아간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특히 청소년 사이에 명품 열풍이 부는 것과 관련해 “지금 젊은 세대들은 돈을 들이더라도 자기만이 소비할 수 있는 물품들을 통해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굉장히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꼭 돈과 등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명품은 가장 쉬운 방법인데 다른 방법들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기획취재팀=엄형준·김수미 선임기자, 박미영·이도형·김나현·안경준·유경민·윤솔·윤준호·이규희·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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