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중심지’로 설계된 세종시
승용차 수송분담률 47% ‘전국 1위’
통근·통학 때 시내버스 이용 8%뿐
낸 요금 지역화폐로 환급
2024년 9월부터 출퇴근시간 시범사업
2025년 광역급행까지 전면 무료화
지역경제 활성화·탄소 저감도 기대
연간 256억 재정부담 숙제
“자가용족 실질 감소 효과 의문” 지적
워싱턴 등 각국 도시들도 시행 결정
전문가 “교통수요 억제정책 병행돼야”
2025년 1월, 세종시의 대중교통 혁신 실험이 시작된다. 세종시민들은 시외·고속버스를 제외한 지역 내 모든 시내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 광역단체 가운데 최초이다. 세종시의 이 같은 도전은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회귀하기 위해서다.
세종시는 대중교통 분담률 70%를 목표로 설계된 도시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도로 구조 한계로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세종시의 승용차 도로 점유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출퇴근 시간대 도심은 상습 정체로 몸살을 앓는다.
도시 기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세종시는 결단했다. 대중교통 활성화다. 교통복지가 아닌 도시계획이다. 대중교통 중심도시를 향하는 세종시의 야심찬 실험, 통할까.
◆자가용족에 점령된 세종시 도로
세종시는 시내 주요 도로 대부분이 편도 2차선이다.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설계돼 주요 도로를 편도 2차선 이하(간선 3차선)로 유지하고 공공청사를 비롯, 민간건물에 주차장을 최대한 적게 계획했다. 승용차 이용을 불편하게 만들어 이용률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부처가 입주하면서 이 같은 설계 취지는 무색해졌다.
세종시 시내버스의 수송분담률은 7%대로, 7대 특·광역시 중 제일 낮다. 서울과 부산은 각각 23%, 20%대이며 대전도 14%대이다.
2019년 기준 세종시의 승용차 수송 분담률은 46.9%로 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높다. 도시 특성상 대전·청주 등 인근 지자체로 출퇴근 수요가 많은 까닭이다.
통근(통학) 때 주요 교통수단으로는 승용차가 72.5%를 차지한다. 반면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은 시내(마을)버스 7.9%, 철도 1.8%, 택시 2.5% 등이다.
16일 강준현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세종시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2007년 2만9583대에서 2018년 14만7862대로 연평균 16%의 증가율을 보였다. 승용차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자가용족이 도로를 점령해 세종 도심은 출퇴근 때마다 극심한 지·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종시민 김호준(43·종촌동)씨는 “종촌동 집에서 세종시청까지 7㎞가 채 안 되는데 출근할 때마다 25∼30분 걸린다”며 “출퇴근 때마다 시내권 주요 구간은 물론 대전에서 세종 진입구간까지 꽉 막힌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도로 인프라 확대가 아닌 운영시스템 변화에서 해법을 찾기로 했다. 승용차 이용률이 높다고 도로 폭을 넓히거나 도로 수를 늘리는 등 도로 인프라 확대보다 대중교통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현재 세종시는 70개 노선에 280대 시내버스가 운행 중이다. 버스요금은 1500원(성인 기준)이다. 2025년부터 세종시는 시민이 낸 버스요금을 지역화폐인 여민전으로 환급한다.
시는 관외 통행버스까지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광역급행버스(M-Bus)와 간선급행버스(BRT) 6개 노선과 시내버스 56개 노선, 마을버스 30개 노선을 비롯, 두루타 등까지 무료화할 예정이다. 2025년 버스와 택시, 자전거, 도보 등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을 60%, 2030년엔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세종시 관계자는 “버스의 종류나 형태에 상관없이 지역 내 정차로 시민이 이용 가능한 모든 버스에 무료화를 적용할 방침”이며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된다”고 말했다. 세종시가 지난 2월 진행한 ‘시내버스 무료화 연구용역’에서 무료화로 기대되는 편익은 통행시간 및 사고비용 절감, 환경개선, 시민교통비 지원, 건강증진, 지역경제활성화 등이다. 2025년에서 2030년까지 5년간 무료화 시행 시 비용대비 편익(B/C)은 1.68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시는 또 광역 통행량이 많은 특성을 감안해 인근 도시를 신속하게 연결하는 광역버스 노선 5개(대전 3개, 청주 1개, 세종∼공주 1개)를 신설할 계획이다. 신규 생활권의 지속적인 확대에 대응해 내부 노선 7개도 추가 설치하고, 읍·면 지역 주요 교통수단인 ‘두루타’ 버스를 확대한다.
◆기후·환경문제에 대응
세종시가 시내버스 요금 무료화를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중교통 활성화로 인한 사회적 효용 가치가 높아서다. 승용차 수송분담률을 낮추면 탄소 배출이 저감된다.
세종시 관계자는 “버스요금 무료화 목적은 일차적으로 승용차 수요를 대중교통으로 전환해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에게 버스요금을 지역화폐로 환급해 소비 선순환을 통한 경제활성화도 도모할 수 있는 등 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버스요금 무료화는 세계 주요 국가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에스토니아 탈린과 미국 워싱턴DC·보스턴 등 이미 세계 196개 도시에서 일부 또는 전면 무료화를 운영하거나 계획 중이다. 탄소 배출 저감, 교통체증 완화, 인구유입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종시(인구 39만명)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유럽 에스토니아의 탈린시(44만명)의 사례는 성공 모델로 평가된다. 탈린시는 2013년 시내버스 무료화 정책을 추진한 후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이 13% 증가했다. 승용차 이용률은 9% 낮아졌다. 인구 유입 효과도 있었다. 3만명이 새로 들어와 주민세 수입이 3000만유로 늘었다.
국내에서도 시내버스 무료화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는 꽤 된다. 경북 청송군은 올해 1월부터 기초단체 중 처음으로 모든 이용객들 대상으로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충남과 대구, 경기, 부산, 경기 화성 등은 어린이와 노인 등 일부 연령층을 대상으로 시내버스 무료화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승용차 이용률 낮추는 게 관건
관건은 ‘승용차 이용자들이 대중교통으로 옮겨갈 것이냐’이다.
세종시의 시내버스 무료화 연구용역을 보면, 승용차 이용자들의 대중교통으로의 환승보다 자전거·도보족의 대중교통 이동률이 훨씬 높게 예측됐다. 세종시민 김숙형(38·종촌동)씨는 “대중교통 이용률이 떨어지는 건 배차간격과 제한된 노선, 접근성 부족 등 서비스의 문제가 크다”며 “무료화를 한다고 해서 승용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대중교통으로 옮겨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정압박도 세종시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시내버스 무료화엔 연간 256억원이 투입된다. 운영비는 시 재정의 3.2∼3.6% 수준으로 전망된다. 2026년 이후 운영비 증액을 감안해도 시 예산의 4% 이내로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시는 분석했다.
대중교통 무료화에 나선 일부 지자체는 재정압박으로 무료탑승 횟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충남도는 2020년 7월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거주하는 시·군 시내버스 무료화를 시행했지만 재정압박으로 무료탑승 횟수를 1일 3회로 제한했다.
세종시 관계자는 “내년 9월부터 출퇴근 무료 시범사업 효과를 분석해 필요한 경우 탑승횟수 제한 등 무료화를 극대화할 다양한 방안을 보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근 대전, 청주와의 협조도 필요하다. 시는 요금 무료화에 이어 대전과 청주, 공주 등을 연결하는 5개 광역노선을 신설한다.
전문가들은 대중교통 무료화 정책이 효과적으로 안착되기 위해선 교통수요 억제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안용준 대전세종연구원 세종연구실장은 “연구용역을 보면 개인 승용차 이용객이 대중교통 이용객으로 넘어가는 비율이 높지 않다. 세종시 시내버스 무료화 정책이 가시적 실효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교통수요 억제정책이 강력하게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실장은 “무료화로 인해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새로운 교통수단인 자율주행버스나 수요응답형버스 등의 요금을 높여 고급교통수단으로 운행하는 등 대중교통서비스의 개선·보완책도 함께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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