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과 건강’ 오해와 진실
늦게 자도 깊은 잠 충분히 자면
아이들 성장호르몬 집중적 분비
올빼미형·종달새형 등 수면 패턴
생활습관보다 유전적 영향 더 커
한국인, OECD國 중 가장 잠 적게 자
수면 부족은 비만·치매 등에도 영향
졸음 쫓을 땐, 커피보다 짧은 낮잠을
잠의 질 향상, 규칙적 생활 가장 중요
“성장호르몬은 얼마나 깊은 잠을 자느냐에 달렸지, 몇 시에 자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장기 아이들은 일찍 자야 키가 큰다’는 것이 정설처럼 알려졌지만 정기영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성장호르몬은 특정 시간대가 아닌 꿀잠이라고 하는 서파 수면(Slow Wave·깊은 수면)일 때 집중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늦게 자더라도 깊은 잠을 충분히 자면 되고, 일찍 자고 늦게 자는 것은 생활습관보다 타고난 체질 때문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대한수면연구학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올해 세계적 권위의 미국수면학회(AASM) 펠로로 선정됐다. 그는 수면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인식을 바로잡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수면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최근 신간 ‘잠의 힘’(에이도스)을 펴냈다. 그는 책에서 한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잠을 적게 자는데, 부족한 수면은 비만뿐 아니라 치매, 혈압, 심혈관 질환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정 교수를 만나 수면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수면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후 10시∼오전 2시에 성장호르몬뿐 아니라 멜라토닌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다. 멜라토닌은 ‘밤의 호르몬’이라고도 부르는데 특정 시간대에 분비되는 게 아니라 멜라토닌이 나와야 잠이 오는 것이다. 멜라토닌은 빛과 관련이 깊은데 빛이 멜라토닌의 생성을 억제하고 빛을 차단하면 멜라토닌 생성이 시작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형’은 멜라토닌이 늦게 나오는 체질이다. 일찍 자고 싶어도 멜라토닌이 안 나와서 못 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올빼미형을 게으름뱅이로 낙인찍는데 올빼미여도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규칙적으로 유지하면 된다.”

-올빼미형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형’이 타고난 체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유전적인 영향도 있나?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크다. 생활습관이나 환경에 의해서 어느 정도는 조절될 수 있지만 유전적 소인, 즉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대체로 그렇게 유지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공부나 운동 등을 하는 ‘미라클 모닝’도 체질에 따라 효과가 다른가?
“종달새형만 효과가 있다. 공부나 운동을 새벽에 해야 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종달새형은 15%, 중간형은 60∼70%, 올빼미형이 20%다. 가장 많은 중간형의 경우 새벽 4시가 심부(몸의 중심부) 체온이 가장 떨어지는 시간, 즉 뇌의 활동이 최악이므로 그때 일어나면 안 된다.”
-수면과 비만의 연관성은 잘 알려졌다. 수면이 부족하면 살이 찌는 이유는?
“잠을 잘 때 식욕 촉진 호르몬인 그렐린의 분비가 억제되고, 지방을 분해하고 식욕을 억제시켜주는 호르몬 렙틴(leptin)이 나오기 때문이다. 잠이 부족하면 렙틴이 감소하고 그렐린은 증가하게 된다. 행동학적 측면에서도 늦게 자면 야식을 먹게 되고 활동량은 낮보다 훨씬 적어진다.”

-수면 부족이 치매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놀랍다.
“해당 연구 결과가 나온 지 10∼15년밖에 안 됐다. 동물 실험과 사람 실험을 통해 잠을 적게 자면 독성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뇌에 축적된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에 쌓이면 신경세포를 서서히 죽이는데 20대부터 기미를 보여 50대가 되면 어느 정도 쌓인다. 하루이틀 못 자는 게 아니라 지속적·장기적으로 수면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안 좋으면 축적되는 것이다. 치매 치료제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수면은 가장 비용이 안 드는 치료제인 셈이다. 수면이 치매 원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평상시 관리만 잘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치매 학계에서도 수면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가장 잠을 적게 자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과 일본이 항상 1, 2등을 다툰다. 일반적으로 서양인보다 아시아인이 덜 자는데,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도 본다. 아시아는 적게 자고 근면한 것이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면장애가 만연하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수면이 부족해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면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기적으로 피로, 졸림, 통증 및 우울감이 증가하고 장기적으로는 고혈압, 당뇨, 비만, 대사증후군, 치매, 암 사망률이 증가한다. 또 사망 교통사고의 50%가 졸음운전에 의한 것이고 산업현장 안전사고 등도 늘어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
-졸음을 쫓는 방법으로 낮잠과 커피 중 어떤 것이 더 효과 있나?
“짧은 낮잠이 훨씬 더 낫다. 단, 30분 이내로 짧게 자야지 30분 이상 길게 자면 깊은 수면 단계로 들어가 쉽게 각성상태로 돌아오기 어렵다. 낮잠의 회복 효과는 3시간 정도 지속되며, 오전이나 초저녁보다 오후 1∼4시에 자야 회복 효과가 크다.”

-책에서 언급한 ‘나푸치노’(낮잠+카푸치노·nap+cappucchino)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커피를 한 잔 마시자마자 바로 15분 정도 낮잠을 자고 나서 15분 정도 있다가 운전하면 커피만 마신 경우보다 운전사고 발생률이 25% 적다는 연구결과다. 커피를 마시면 30분 정도 지나야 각성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짧은 낮잠을 자면 ‘파워 낮잠’ 효과와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것은?
“규칙적인 생활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해야 한다. 자는 시간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따라오게 돼 있다. 주중에 잠을 충분히 못 잔다고 주말에 몰아서 자기보다는 주말에도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주중에 피곤할 때 짧은 낮잠을 자는 것이 좋다. 외적인 환경의 경우 수면은 빛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빛은 멜라토닌을 억제시키는 파란색 파장이 많이 섞여 있다. 잠들기 2시간 전에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LED 조명을 환하게 켜놓지 말고, 가볍게 샤워해서 심부체온을 떨어뜨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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