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기업 부채 증가가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가계+기업) 비율은 지난해 281.7%로 5년 전보다 42.8%포인트 올랐다. 관련 통계가 확인되는 26개국 중 가장 높은 증가 폭이다. 정부 부채도 빠르게 불어나 경제주체 모두가 빚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가계부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 된 지 오래다. GDP 대비 비율은 2017년 92%에서 지난해 108.1%로 16%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두 자릿수 증가는 한국이 유일하고 절대 수준도 두 번째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데다 빚을 내 집을 사들인 ‘영끌족’이 늘어난 탓이다. 최근 2년간 고금리가 이어졌지만 가계빚 증가세는 꺾일 기미가 없다. 1년 새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13조3820억원이나 늘어났다. 가계의 소득 대비 이자 부담은 2분기 중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가구 10곳 중 4곳이 이자를 지출한다. 고금리발 소비 위축과 가계 파산 우려가 가실 줄 모른다.
기업부채도 심각하다. GDP 대비 비율이 지난해 173.6%로 5년 전보다 26.6%포인트 증가했다. 무더기 도산이 이어졌던 1998년 IMF 외환위기(108.6%)는 물론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99.6%)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 내리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은 3900곳으로 전체(외부감사 대상 비금융기업)의 15%에 달한다. 5년 사이에 가장 높은 비중이다. 고금리와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기업 부도 대란이 현실로 닥칠 수 있다.
빚 폭탄의 뇌관을 방치하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경기 회복의 길은 요원하고 금융 시스템마저 망가질 수 있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부채 관련 위험을 꼼꼼히 점검한 뒤 부실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 기업과 회생가능성이 없는 부실 기업을 구분하는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 좀비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우량 기업은 유동성 지원 등을 통해 흑자도산을 막아야 한다. 가계도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재기 가능한 차주는 이자 감면, 상환 유예 등 채무 조정 및 신용 회복 프로그램을 빈틈없이 가동하되 한계 차주는 사회안전망을 활용해 관리하기 바란다. 정부가 빚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모럴해저드를 초래하지 않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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