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종종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1992년 대선 캠페인 문구다. 걸프전 승리로 한때 90% 지지율을 기록했던 조지 H.W. 부시 대통령에 맞선 ‘아칸소 촌뜨기’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경기 침체로 인한 민생 문제를 파고들었다. 클린턴의 승리는 국가 지도자의 외교안보 능력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지만 결국 먹고 사는 문제가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줬다. 하지만 정치 신인 빌 클린턴의 승리에는 또 다른 일등 공신이 있었다. 제3 후보로 부상한 로스 페로였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텍사스 출신 기업가 로스 페로는 무려 18.9%를 얻었는데 부시 표를 분산시켜 사실상 클린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생 이슈는 선거 판의 상수다. 더욱이 요즘처럼 저성장, 경기 침체 시대에 민심을 좌우할 공산이 크다. 어느 쪽 진영에도 마음을 주지 않는 ‘무당파’의 흐름 또한 판도를 좌우할 변수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역대 유례가 없을 만큼 제3 후보에 몰표가 쏟아진 건 두 거대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염증이 컸기 때문이다. 그들이 표를 던진 로스 페로는 낙선했지만, 선거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쳤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22대 총선에서도 민생 이슈가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 안팎으로 나오는 ‘무당파’의 향배도 주목된다. 전국 추석 민심을 훑어본 ‘“정치복원, 민생 살려라”...회초리 든 민심’(10월4일자, 조병욱·최우석 기자, 정치부·사회2부 종합) 기사는 두 거대 정당을 질타하는 유권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먹고 살기 힘든데 서민 고충 몰라”
평소 신문 정치면을 차지하는 기사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간 권력 다툼에 관한 것이다. 두 거대 정당이 죽기살기로 싸우는 건 ‘민심’을 얻기 위한 것인데 정작 취재진이 만난 유권자들은 ‘싸울 시간 있으면 민생 현장을 좀 보라’는 것이다. 인천 서구에 사는 주부 박모씨는 “생활물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르는데 정부가 이런 고충을 아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60대 자영업자 최모씨는 “바로 옆식당이 지난달 문을 닫았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뉴스를 보면 여전히 안 좋은 일로 시끄럽다”고 했다. 충청 당진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모씨도 “전 정부와는 달리, 물가나 부동산 정책은 이번 정부에서 잘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밖에 못 하는지 답답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지방의 목소리는 더 심각하다. 부산 지역의 취업 준비생 백모씨는 “부산에서 살고 싶지만 일자리를 찾아 서울 등 수도권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광양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여야를 떠나 지역에 기업을 하나라도 더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 경기도 살릴 수 있는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전북 전주 남부시장의 70대 상인은 “명절이 길면 뭐 하나. 경제가 워낙 안 좋다보니 대목 특수는커녕 장사가 안돼 먹고 살기가 갈수록 힘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마음 둘 곳 없어 투표 포기할지도”
선거 때마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않는다는 ‘무당파’가 20%대 안팎을 유지했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30%대로 늘어나는 추세다. 40%에 육박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만큼 여도, 야도 싫다는 중간 지대의 유권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 수원의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이나 계파싸움에 빠진 야당에 모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어 내년 총선때 투표장에 갈 지 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취재진은 여, 야의 전통적인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 호남에서도 무당층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경북 예천군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50대 윤모씨는 “서로 공격하고 흠집만 내는 정치에 질렸다”면서 아예 정치 뉴스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울산 남구의 60대 자영업자 김모씨도 “여당은 매번 전 정부 욕하고, 야당은 현 정부를 비난만하더라. 어디에도 국민은 없는 듯하다”고 했다. 광주 도심에서 취재진이 만난 50대 택시 운전기사는 “그동안 선거때마다 민주당 후보에 표를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면서 이번에는 이 틀에서 벗어나고싶다고 했다.
심야까지 각축전이 벌어지는 총선 결과를 전하는 신문 1면의 제목은 종종 ‘예상밖 참패’ ‘뜻밖의 압승’과 같은 놀라움을 담는다. 취재진이 여야 정당으로부터 듣는 판세와는 다른 민심을 확인한데 따른 것이다. 여야 정당은 선거 구도나 출마 후보의 됨됨이 등을 근거로 판세를 점친다. 민심은 ‘누가, 어느 쪽이 먹고 사는 문제에 유능한가’에 대한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 30%대에 달하는 무당파들도 자신의 투표로 세상이 달라진다고 믿어야 투표장으로 나온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선 어느 쪽이 ‘예상밖’ 성적표를 받을까.
P.S. 취재한 오상도 기자에 물었습니다.
-경기도 지역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데 추석때 만난 민심은.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가 그런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니 염증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고, 진영별로 격차가 매우 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은 말도 못꺼내게 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대에 대한 증오 수준이 매우 크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출신이고 현 김동연 지사도 민주당 소속이라 다른 시·도에 비해 분위기가 다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야 후보 표차가 7000표에 불과할 정도로 팽팽했다. 그런 정서가 계속된다고 봐야 한다. 분당 같은 경우 2011년 손학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기 이전, ‘제2의 강남’으로 불리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
-경기지역 최대 이슈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수원 군공항 이전 등에 지역민들의 관심이 많다. 특히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양평 고속도로와 관련해서 지역민들은 똘똘 뭉쳐있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 정쟁 거리로 만들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예정된 시기에 고속도로를 착공해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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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gye.com/newsView/2023100351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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