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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스러운 성자”… 한국의 나한, 일본과 어떻게 다른가 [일본 속 우리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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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12 10:00:00 수정 : 2023-10-12 08: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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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규슈박물관, 고려·조선 불교미술展 나한도 3점 전시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 나한에는 인간적인 면모 부각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 “아이 같은 익살, 무구함” 압권

나한은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은 성자다. 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존재다. 그러나 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유보한다. 중생을 위해서다. 본래의 의미만 놓고 보면 가장 숭고한 ‘인간’이겠으나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점차 인식되어 ‘신’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 중국, 일본에 나한을 소재로 한 많은 그림, 조각 등이 전해지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융성했던 나한신앙의 흔적이다.   

 

일본 규슈국립박물관이 15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전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에 나한도 3점이 출품됐다.

일본 문화청 소장 오백나한도. 규슈국립박물관 도록 촬영

13세기 고려에서 그려진 나라 야마토분카간 소장 ‘제234 상음수존자(上音手尊者)’, 일본 문화청 소장 ‘제282 보수(평)존자(寶手(平)尊者)’는 같은 오백나한도의 일부다. 비슷한 형식의 오백나한도를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도쿄국립박물관,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갖고 있다.  

 

지온인 소장 오백나한도는 석가삼존을 중앙에 두고 산수 풍경 속에 오백나한 전부를 배치했다. 현전하는 전 세계 오백나한도 중 한 폭에 오백나한 모두를 그린 유일한 사례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이 그림은 중국 화가의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나한도는 십육나한, 십팔나한, 오백나한으로 표현된다. 한국에선 십육나한, 오백나한이 많고 중국, 일본과 달리 십팔나한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 중국, 일본에선 나한을 몇 명씩 무리지어 20폭, 25폭 등으로 그려낸 것과 달리 나한 한 명씩을 각각의 폭에 그리거나 한 폭 안에 모두 그리는 경향이 강했다. 규슈박물관 전시회 출품작이 이런 사례인 셈이다. 

일본 지온인 소장 오백나한도. 규슈국립박물관 도록 촬영

한국의 나한은 중국, 일본의 그것과 모습도 달랐다. 한국의 나한에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나한은 불상, 보살상에 비해 자유로운 형식 아래 제작 당시의 인식, 작가의 의도나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대체적인 특성은 있다. 중국, 일본의 나한은 엄숙한 표정, 위엄있는 모습이 많다. 무서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응시하거나 고요하게 선정(禪定)에 들어간 상태를 표현했다. “나한의 다양한 성격 중 불·보살에 버금하는 위력, 혹은 위엄, 신성을 좀 더 강조, 부각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반면 한국의 나한은 표정이 좀 더 다양하며 인간적이다. 놀라는 표정, 하늘을 올려다보는 표정, 무리를 이뤄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등에서 친근감, 생동감이 넘친다. 조선후기에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나한이 중생들처럼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는 당시의 인식, 중생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들의 의지가 작동한 결과다.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 도록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 촬영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한국적 나한의 대표격이다. 

 

약 300년 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창령사 터에서 높이 30~40cm의 돌 한쪽 면에 조각한 나한상 완형, 머리 등 신체 파편 317개가 발굴됐다. 정황상 누군가 일부러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 흔적이 있고, 건물 내부에 두었을 나한상들이 대부분 외부에서 발굴돼 화재 전 누군가 옮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80%정도가 부서진 채로 발견됐는데 상대적으로 견고한 부위가 일정한 유형으로 깨진 점도 의도적인 훼불의 근거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사랑스러운 표정이 압권이다. 심통이 난 것 같은, 혹은 근심에 찬 듯한 표정마저 동글동글한 신체와 어우러져 사랑스럽기 그지 없지만 아이의 그것에 다름 아닌 미소가 백미다. 춘천박물관은 “동작이나 표정이 갖는 익살, 어린아이 같은 무구함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을 표현한다”며 “나와 실은 다르지 않은 높이에 있고 내가 쉽게 ‘맞먹고’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란 점에서 부처와는 다른 동일시가 거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정현종 시인은 춘천박물관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에 실은 시에서 나한의 미소를 노래했다. 

 

“어휴, 이 미소는

한없이 크고 넓어,

도무지 크고 넓기만 해

만물이 편안하네, 마음대로”


후쿠오카=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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