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 도피 범주…수사기관 속인 것 아냐”
‘가평계곡 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은해(32)·조현수(31)가 검찰 수사 당시 넉 달 간 숨어 지냈던 일에 대해선 추가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두 사람의 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판결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씨와 조씨는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특별법 혐의로 지난 9월 같은 대법원 소부에서 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확정받았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지난 2019년 6월30일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윤모(사망 당시 39세)씨를 물에 빠지게 해 살해한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확정받았다.
검찰은 이와 별개로 이은해와 조현수가 지난 2021년 12월13일 검찰의 1차 조사를 마친 뒤 같은 날 A(33)씨와 B(32)씨에게 도피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을 바탕으로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적용했다.
두 사람은 잠적해 약 4개월간 도망 다니다 작년 4월16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오피스텔에서 검거됐다.
판례에 따라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 자신의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도피도 일종의 방어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등 방어권을 남용한 사정이 있다면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있다.
검찰은 이은해와 조현수에게는 각각 범인도피교사죄를, 도피를 도운 A씨와 B씨에게는 각각 범인도피죄를 적용했다. 특히 이은해와 조현수의 경우 스스로 도피하기 위한 행위였지만,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난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봤다.
1심에서는 이은해와 조은혜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스스로를 도피시키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나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하거나 형사피의자로서 가지는 방어권을 남용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속하게 종적을 감춘 다음 은신처와 휴대전화, 컴퓨터, 생활용품 등을 확보하고, 다수의 일손과 승용차를 통해 손쉽게 이사해 추정을 피했다. 수사기관의 집중적인 탐문과 수색에도 불구하고 12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도피생활을 지속했다”며 통상의 도피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2심에서도 재판부는 쌍방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통상적 도피의 범주로 볼 여지가 충분해 방어권을 남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을 뒤집었다.
또 “증거가 발견된 시기에 도피했다거나, 도피생활이 120일간 지속됐다는 것, 수사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던 것, 변호인을 선임하려고 했다는 것, 일부 물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 등은 통상적인 도피행위 범주에 포함된다”며 “이런 사정만으로 형사사법에 중대한 방해를 초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가 제공한 도움의 핵심은 은신처 제공과 은신처를 옮기기 위한 이사 행위”라며 “수사기관을 적극적으로 속이거나, 범인의 발견·체포를 곤란하도록 적극적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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