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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제시간에 역을 떠났다…“방패 가로막혀도 투쟁”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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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06 06:52:14 수정 : 2024-01-06 06: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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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출근길 하루가 시작되면 차가운 눈초리와 혐오 속에 장애인 인권을 외치네”

 

서울 종로구 4호선 혜화역 역사 동대문역 방향 승강장에는 노래 ‘열차 타는 사람들’이 울렸다. 이에 질세라 노래보다 큰 소리로 안내 방송이 나왔다. “특정 장애인 단체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철도종사자의 정당한 지시와 안내에 불응하는 행위는 철도안전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즉시 시위를 중단하시고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혜화역 2번 출구 방향 벽면에도 ‘허가 없는 역사 내 연설, 권유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4호선 혜화역 역사 2번 출구 방향 벽면에 전장연 시위를 겨냥한 경고 펼침막이 걸려 있다.

열차는 제시간에 오고 제시간에 떠났다. 속절없이 떠나는 열차를 보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난 2일 아침 56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예고한 전장연 회원들은 서울교통공사(서교공) 직원과 경찰의 제지로 열차에 타지 못했다. 열차 문이 열릴 때마다 이들은 “장애인도 지하철 타고 싶습니다”라고 외칠 뿐이었다. 열차에서 내린 시민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활동가들이 나눠 주는 전단을 받았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4호선 혜화역 동대문역 방향 승강장에서 전장연 회원들이 출근길 시민들에게 규탄 전단을 나눠 주고 있다.

한 장애인 활동가 앞으로 직원 6명이 서교공 심볼이 그려진 방패를 들고 섰다. 지하철 탑승을 막기 위해서다. 흰색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휠체어에 앉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패에 둘러싸여 시위 내내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활동가는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새해를 맞이해 장애인이 살기 편한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시위에 나왔다”고 말했다. 한 유튜버는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하며 ‘전장연의 아침출근길 불법시위’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실시간 중계를 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4호선 혜화역 동대문역 방향 승강장에서 한 전장연 활동가 앞을 서교공 직원 6명이 방패로 둘러싸고 있다. 이들 뒤에는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이들은 서교공 직원,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다 역사 밖으로 퇴거했다.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권달주 전장연 공동대표는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시민들에게 호소하고자 섰다”며 “여야가 합의한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예산 271억원 증액안이라도 보장해달라고 외쳤지만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의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예산 삭감을 언급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일자리를 복원하고 다시 대화에 나설 때까지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타고 선전전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장연은 오 시장이 면담에 응하지 않는다면 2001년 ‘오이도역 사고’ 23주기를 맞는 오는 22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4호선 혜화역 역사 2번 출구 인근에서 전장연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5일에는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시위하던 전장연 활동가가 경찰에 연행됐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이날 오전 8시40분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위하던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퇴거불응·업무방해·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이 대표 등은 서울시에서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400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데 반발하며 시위 중이었다. 이날 시위는 전동차에 탑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승강장에서 요구사항을 외치는 방식이었다. 경찰이 전장연 활동가를 연행한 것은 지난달 15일 이후 3주 만이다. 지난달에도 이 대표 등 4명이 혜화역 대합실에서 침묵시위를 하다 잇따라 경찰에 연행됐다.


글·사진=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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