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은 속도 무제한 구간으로 유명하다. 시속 130㎞의 권장 속도가 있기는 하지만 절반 이상의 구간에서 속도 제한 없이 달릴 수 있다. 이러한 고속도로가 우리나라에도 추진된다. ‘선심성 공약’이라는 논란을 넘어 우리나라 교통 여건에서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가 가능할까.

◆한국형 아우토반 추진한다는데
정부는 지난 14일 전남도청에서 ‘미래산업과 문화로 힘차게 도약하는 전남’을 주제로 민생토론회를 개최했다. 호남의 교통 인프라 확충과 관광, 우주, 이차전지, 문화 콘텐츠, 농축수산업 발전이 언급됐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남의 생활권을 확장하고 광역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한 중요 과제가 교통 인프라 확충”이라며 “영암에서 광주까지 47㎞ 구간에 약 2조6000억원을 투입해 독일의 아우토반 같은 초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영암∼광주 초고속도로는 시속 140㎞ 이상 무제한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편도 2차로 이상 고속국도 제한최고속도는 기본적으로 시속 100㎞이고, 필요시 시속 120㎞ 이내다. 시속 140㎞ 이상 초고속도로에 대한 도로 설계기준은 물론이고 개념 정립조차 돼 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영암∼광주 초고속도로를 추진하기 위해 상위계획인 국가도로망 종합계획(10년 단위)과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반영해야 하고, 초고속도로 설계기준 등을 마련한 뒤 관련법(도로교통법령) 개정까지 마쳐야 한다.
국토부는 우선 설계속도를 상향할 경우 도로 폭, 곡선반경, 안전시설 등 도로 설계기준 개정 등의 검토를 위한 연구용역을 3월 발주 요청하고 5월 착수할 계획이다. 연구용역을 통해 내년까지 초고속도로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설계기준 등의 마련과 함께 초고속도로 등 미래형 도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할 계획이다.

◆“폭주족 놀이터” 우려 쏟아져
일견 ‘꿈의 고속도로’로 보이는 한국형 아우토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속도 제한을 없앤다면 자연스럽게 사고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영암∼광주 초고속도로를 추진한다는 기사에 “전국 폭주족이 모두 몰려와 폭주족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등 안전에 대한 우려의 반응이 쏟아졌다.
실제 영암∼광주 초고속도로를 추진에는 자동차 애호가들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다. 영암에는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원(F1) 경기장이 있어 자동차 동호인들을 사로잡을 만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 자동차 산업에 대비한 새 도로체계 도입 필요성도 또 다른 주요 이유다.
국토부는 “점차 늘어나는 자동차 동호인과 일본과 중국의 마니아층 등을 타깃으로 자동차 문화를 즐기고, 새로운 도로체계도 준비하는 미래 자동차산업의 핵심 기반이 될 전망”이라며 “자동차 성능 향상, 자율주행 상용화, UAM 등 모빌리티 기술발전과 미래형 도로 방향으로의 빠른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초고속도로 등 차세대 도로에 대한 도입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47㎞의 짧은 구간만 속도 무제한을 적용하는 것도 논란이다. 시속 150㎞로 주행할 경우 약 20분이면 통과하는 거리다. 아우토반은 독일 전체에 깔린 고속도로망의 약 70% 구간이 속도 무제한이다.
◆과거에도 한국형 아우토반 무산되기도
한국형 아우토반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속도 제한을 없애거나, 제한을 상향하려는 계획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모두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 2007년 정부는 첨단 정보기술(IT)과 자동차기술을 결합한 차세대 고성능·지능형 고속도로 개발 프로젝트 ‘스마트 하이웨이 계획’을 추진했다. 시속 160㎞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다.
‘스마트 하이웨이’는 이후 신설되는 고속도로에 개념이 언급됐지만 무제한 속도가 적용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 속도 상향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과거보다 교통량이 많아진 데다 차량 성능도 좋아진 만큼 속도를 조금씩 높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설계속도는 1979년 최고 시속 120㎞로 설정된 이후 40년 넘게 그대로다.
국토부는 지난 2015년 설계속도를 시속 140㎞로 상향해 서울~세종고속도로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루 예상교통량 10만대를 처리하는 수도권 마지막 장거리 노선이면서 서울과 세종을 바로 연결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하지만 공청회 등으로 관계 부처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설계속도 상향은 결국 무산됐다. 사회적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의 이유였다. 결국 서울~세종 고속도로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다른 고속도로와 같은 시속 120㎞로 맞춰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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