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에서 ‘녹음기’로 인한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교사들이 휴대용 ‘녹음방지기’까지 사고 있다”며 “막장 교실이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밝혔다.
31일 교총에 따르면 최근 자녀에게 녹음기를 숨겨 보내는 학부모가 증가하면서 교사들이 값비싼 휴대용 녹음방지기를 구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교총은 “법을 어기면서 자녀 몰래 녹음기를 들려 보내는 학부모가 늘고, 교사는 불안한 마음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녹음방지기까지 사고 있다”며 현재의 교실이 ‘세계 유래를 찾기 힘든 막장교실’이라고 지적했다.
교총은 “교사들의 사용 후기를 보면 녹음 방지도 안 되고 환불도 안 되니 사지 말라는 글들이 올라온다”며 “오죽했으면 교사들이 성능 확인도 안 된 녹음방지기를 샀겠나.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불신과 감시의 교실에서 교사가 어떻게 학생을 열정으로 가르치고 학생들은 존중과 배려, 협력을 배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총은 앞서 법원의 판단이 학부모들의 ‘몰래 녹음’을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지난 2월 수원지방법원은 웹툰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특수교사에 대해 유죄판결을 하면서 몰래 녹음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피해자는 인지 능력과 표현력이 또래보다 현저히 떨어져 아동학대를 스스로 방어할 수 없다”며 “피해자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모친이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총은 “법원이 웹툰작가 자녀의 아동학대 소송에서 ‘몰래 녹음’을 증거로 인정했을 때 교실을 불법 녹음장으로 전락시키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라며 “앞으로 어떤 일이 더 벌어질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고 지적했다. 또 “교실 몰래 녹음의 예외 인정은 또 다른 예외를 낳게 되고, 결국 모호한 예외 기준이 면죄부만 부여해 몰래 녹음 만연을 초래할 것”이라며 “교실을 황폐화하는 몰래 녹음은 불법임을 분명히 하고 엄벌해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지난달부터 이달 21일까지 전국 교원 4만6500여명으로부터 ‘몰래 녹음 불인정 및 특수교사 무죄 촉구 탄원 서명’을 받아 수원지방법원에 전달했다. 또 최근 몰래 녹음 근절 방안 마련, 현장체험학습 교사 보호 추진 등 10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교총은 “사제간 불신을 초래하고 교육 현장을 황폐화하는 교실 몰래 녹음 근절 방안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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