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악화되자 “경제적 위기” 아우성
부안군선 은행 상대 ‘부당이득訴’ 승소
재판부 “시행사 과다한 지급보수 지불”
업계 “수익만 노린 무분별 사업도 문제”
금감원, PF 사업장 평가 등 발표 계획
한신평, PF 스트레스 테스트 공개
저축은행 PF사업장 절반가량 ‘위험’
금융당국, 이르면 4월 말 대책 발표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에 위치한 ‘르니드오피스텔’. 연말 완공 예정인 이 건물을 둘러싸고 시행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주관한 금융사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 시행사는 PF를 주관한 메리츠증권이 과도한 수수료를 매기고 관련 뇌물까지 챙겼다며 증권사 전 임원인 A씨를 고소하고 나섰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지난 18일 메리츠증권의 전 임원 A씨를 르니드오피스텔의 개발과정에서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수재) 등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송치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시행사는 메리츠증권의 부동산PF 담당 전 임원 A씨가 서초 르니드의 대출 자문을 하면서 본PF 자금 2270억원을 조달해 주는 대가로 개인 수수료 명목으로 약 20억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PF 대출금 중 28억3000만원을 A씨 실소유 기업에 토지 매입 및 금융 조달 관련 컨설팅 등 PM(건설사업관리) 용역 명목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대형 건설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건설사 담당자에게 쥐어줄 3억3000만원, 금융자문 수수료 3억원, 연말 접대비 명목으로 1000만원 등 수차례 뇌물을 전했다는 게 시행사 측 전언이다. 메리츠증권 측은 “해당 임원은 이미 퇴사한 상태”라며 “퇴사 후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고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PF 조달 위해 불공정 계약 감수할 수밖에”
부동산 PF는 보통 특별한 물적 담보 없이 미래가치만을 담보로 해 재원을 공급하는 만큼 고위험 투자로 분류된다. 분양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보통 수천억대 고수익을 낼 수 있지만 부동산 경기변동부터 정부의 시장 규제, 금리 상황 등 다양한 리스크가 존재한다. 사업을 시행하는 시행사 및 시공사는 거액을 대주는 금융사 앞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그러다 보니 PF 주관 금융사 직원의 비위와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김정주 한국건설사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부동산 PF 약정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보완방안’ 보고서에서 “국내에서 부동산 PF는 시공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익 대비 사업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위험을 지는 구조로 지난 20여년간 운영돼 왔다”며 “이런 특징이 지금의 위기를 발생시킨 요인의 하나”라고 지목했다. 이어 “제한적인 수주 기회를 기업 생존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다수 중소·중견 건설사와 자본력이 열위한 개발사(시행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불공정한 계약 내용을 감수하고서라도 PF 조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개발·건설업계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이 같은 불공정 거래에도 부동산 PF 관련 약정은 기본적으로 ‘사적계약’인 만큼 당사자의 책임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관행처럼 넘어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PF 사업장이 늘어나면서 약정 자체가 과다하게 불리하다는 비난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10월 시행사가 부동산 PF 대출을 주관한 전북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소송에서 시행사 손을 들어준 것이 하나의 사례다. 전북은행은 2017년 전북 부안군의 한 공동주택 신축사업의 시행사 B사에 최대 200억원 부동산 PF 대출을 자문하고 수수료로 8억원을 받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아울러 시행사에 200억원을 빌려주고 대출금에 대한 이자(연 5.5%)와 별도로 매년 3000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출 및 사업약정’을 체결했다. 전북은행은 사업의 수분양자들에게 중도금을 대출해 주기로 하면서 중도금대출 금융주선수수료 약정도 체결했고 6억3856만원을 받았다.
시행사는 5개월간 전북은행으로부터 100억원을 대출받으면서 이자와 수수료 명목으로 16억9910만원을 낸 것이 신의성실 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기간을 감안하면 연이율 40%를 상회하는 금액을 이체했고 관련 보수로 과다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전북은행이 수행한 일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하다”며 4억3156만원을 시행사에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고위험 사업…과도한 수수료의 배경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제대로 된 사업성 평가 없이 고수익을 노리고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시행사도 이 같은 문제의 발단이 됐다고 지적한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수수료를 과도하게 부를 수밖에 없는 거래들도 문제”라며 “자금 유동성이 높을 때는 적절한 수준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리스크는 제곱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들에 사업을 벌인 시행사, 건설사들이 있다 보니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비상식적이고 극단적인 거래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부터 증권, 보험사, 여전사 등 7개 금융사에 대해 부동산PF 수수료 실태를 점검하는 현장검사를 진행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현장점검 결과와 함께 사업장 평가기준 등 부동산PF 사업장에 대한 옥석가리기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시행사의 자기자본을 강화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2일 건설업계 간담회 이후 “본질적으로는 (사업장) 리스크에 대한 판단이 안 되다 보니 전체 리스크를 많이 보게 되고 (PF) 이자 수수료가 높아진 것”이라며 “안 될 사업장은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가격 조정이 일어나도록 하고, 연장될 만한 것들은 시장가치를 판단해서 장기로 차환될 수 있도록 비용을 떨어뜨리자는 것이 원칙이며 중장기적 로드맵”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PF 부실 공포 증폭… “최악 땐 7조6000억원 손실”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확대되고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26개 증권사는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하면 7조6000억원 수준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다.
24일 한국신용평가의 ‘부동산 PF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부동산 브리지론의 본PF 전환 실패율이 지역별로 40∼80% 수준으로 형성되는 연착륙 시나리오에서 증권사 손실액은 4조6000억원으로 추정됐다. 본PF 전환 실패율이 50~90% 수준인 경착륙은 5조7000억원, 60∼100%인 위기 상황 손실액은 7조6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존 적립한 부동산PF 충당금은 대형사의 경우 약 2조원, 중소형사의 경우 약 1조1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한신평은 위기 상황이 도래하는 경우 “모회사 지원이 없거나 취약한 중소형사의 경우 유동성 대응에 따른 리스크 확대로 신용등급 조정대상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소형사는 그동안 부동산PF 시장에 대해 높은 의존도를 보이며 성장했으나 현재는 PF시장 침체로 수익기반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이를 대체할 뚜렷한 수익원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저축은행의 경우에는 PF 사업장 절반가량이 ‘위험’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신평에 따르면 저축은행 브리지론 사업장 43.3%의 리스크 수준이 높음 이상이었고, 본PF 사업장 66%의 리스크 수준이 높음 이상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경·공매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사업장 정리에 나서고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5조6000억원으로 연체율은 2.70%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전 금융권과 간담회를 가지며 부동산 PF 정상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기본적인 방향은 사업성이 있는 곳은 신규자금을 투입해 정상화하고 사업성이 없는 곳은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당국은 사업장을 양호-보통-악화우려-회수의문 등 4단계로 구분하고 악화우려나 회수의문 사업장에 대해 경·공매 등을 유도하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대책은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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