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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지킨 한반도 하늘 위로… '불멸의 도깨비' F-4 마지막 비행 [뉴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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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13 06:00:00 수정 : 2024-05-13 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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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퇴역 앞두고 고별순례
1969년 도입… 방위성금으로 구매도

AGM-142 공대지 미사일 탑재
“‘팬텀’ 뜨면 北 비행기 꼬리 감춰”

평택·천안·포항·대구 등 상공 날아
KAI 위치한 사천선 KF-21 합류
F-15K와 과거·현재·미래 보여줘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신 받고
3시간여 만에 수원 기지로 복귀
“조국 수호의 의지는 영원할 것”

“오늘 하늘은 세븐 클리어입니다. 팬텀(F-4 전투기)이 고별 순례를 하기에 딱 좋은 날씨죠.”

 

지난 9일 경기 수원시 제10전투비행단에서 바라본 상공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을 8등분했을 때 지상으로부터 7단계까지 구름이 없다고 했다. 반세기 넘게 영공을 지킨 ‘하늘의 도깨비’ F-4E의 마지막 비행을 하늘이 응원하는 듯했다.

“굿바이 팬텀” 대한민국 공군은 F-4E 팬텀 4대가 지난 9일 49년 만의 국토순례 비행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12일 밝혔다. 팬텀은 1969년 도입된 후 1994년 KF-16이 전력화하기 전까지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다. 팬텀 퇴역식은 다음달 7일 수원기지에서 열린다. 사진은 수원상공을 비행하는 모습. 공군 제공

다음 달 7일 퇴역식을 앞둔 F-4E는 이날 49년 만에 고별 국토순례비행에 나섰다. 취재진은 조종복과 장구를 착용하고 후방석에 탑승해 마지막 비행을 체험했다. 비행에 나선 4대에는 필승편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975년 방위성금으로 구매한 F-4D 5대로 구성된 편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부여했던 명칭이다. 당시 북한 김일성의 중국 방문, 베트남 공산화 등 안보 위기가 현실화하자 국민들은 방위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163억원 중 71억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5대를 구입했다. 이들은 서울 등 12개 주요 도시 상공을 순례비행하며 국민에게 신고식을 했다. F-4는 1969년 도입된 후 1994년 KF-16 전력화 전까지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다. 지금은 대부분 퇴역하고 F-4E 10여대만 운용하고 있으며, 이 중 6대가 수원 기지에 있다.

 

고별비행에 나선 4대 중 2대에는 한국 공군 F-4의 옛 도색이었던 정글 위장 무늬와 연회색 도색을, 나머지는 현재의 진회색 도색으로 비행했다. 동체 측면에는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라는 기념 문구와 함께 F-4를 상징하는 스푸크(spook·유령)가 그려졌다.

 

스푸크는 F-4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항공기의 후방 모습을 보고 착안해 그린 캐릭터로서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았다. 왼쪽 스푸크는 공군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매고 가슴에 태극 무늬를 새겼다. 오른쪽 스푸크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頭釘鉀)을 입고 공군에서 F-4E만이 운용할 수 있는 AGM-142 팝아이 공대지 미사일을 들었다.

F-4 상징 ‘유령’ 새기고… 다음달 7일 퇴역을 앞두고 고별비행에 나선 공군 F-4E 팬텀 ‘필승편대’의 동체 측면에는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5년 방위성금으로 구매한 F-4D 5대에 ‘필승연대’라는 명칭을 직접 부여했다. 공군 제공

 

편대를 이끄는 1번기는 전·후방 조종사 모두 베테랑으로 편성됐다. 2~4번기 후방석엔 기자들이 탑승했다. 무기통제사로 불리는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후방석 조종사로 830시간을 비행한 제11전투비행단 부단장 이성진 대령은 “AGM-142를 비롯해 최대 8480㎏이라는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기에 F-4가 뜨면 북한이 아예 비행기 자체를 띄우지 않았다”며 “후방석은 좁은 조종석, 제한된 시야, 비행 중 지속적으로 레이더 및 계기판 관측 등에 몰두해야 하는 것 때문에 멀미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F-4E는 오랜 시간 임무를 수행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후방석에 앉아 착용한 안전벨트의 가죽은 낡았고, 쇠붙이로 된 결속부는 닳아 있었다. 전투기의 계기판과 백미러도 때가 탔다. 고별비행이란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활주로를 마주한 F-4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기체가 이륙하는 데 걸린 시간은 8초. 10시 정각에 필승편대의 고별 국토순례비행이 시작됐다. 필승편대는 역 V자 모양인 핑거팁(손가락을 붙였을 때 검지부터 소지까지의 삼각형 모양) 대형으로 편대비행했다. 촬영을 위해 F-15K 2대도 편대에 합류했다.

공군은 12일 '필승편대' F-4E 팬텀 4대가 49년 만의 국토순례 비행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팬텀과 KF-21이 편대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 공군 제공

필승편대는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 기지가 있는 평택과 독립기념관이 있는 천안 상공을 날았다. 공군의 핵심 거점인 충주·청주기지 상공을 통과한 편대는 과거 F-4가 활약한 동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F-4는 1983년 Tu-16 폭격기, 1984년 Tu-95 폭격기 등 동해안 일대에 나타난 옛소련 전력 차단에 나선 바 있다.

귀순한 北 MiG-19기 유도하는 F-4 공군 F-4E 팬텀 전투기가 1983년 2월25일 서해 연평도 상공을 통해 귀순하는 북한 공군 리웅평 대위가 탄 MiG-19기를 수원 기지로 안전하게 유도하고 있다. F-4 팬텀은 1969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후 55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고 다양한 작전에 투입됐다. 공군 제공

한국 중공업과 무역 성장을 이끈 포항·울산·부산·거제를 통과한 편대가 대구로 기수를 돌리고자 남에서 북으로 급선회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실제 폭격 훈련에서 조종사들이 극복했을 역경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수원 기지 이륙 후 1시간 46분이 지나서야 대구 제11전투비행단에 착륙했다. 대구기지는 1969년 8월29일 미국이 공여한 F-4D 인수식이 열린 곳이다. 한국은 당대 최강 전투기였던 F-4D의 4번째 운용국이 되면서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

 

재급유를 마친 편대는 국산 KF-21을 개발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치한 경남 사천으로 향했다. 사천 상공에서는 KF-21 2대가 합류했다. 한국 전투기의 과거(F-4E)와 현재(F-15K), 미래(KF-21)가 한데 모여 비행하는 모습이 펼쳐지면서, 한국 공군의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편대 후방에서 비행하던 KF-21은 여수 상공부터는 전방으로 이동하며 앞으로 F-4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 상공까지 동행하던 중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복귀하십시오”라는 KF-21 조종사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F-4E 탑승자는 물론 55년간 임무를 마치고 수원기지로 돌아가는 F-4에게 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KF-21은 우측으로 급선회하며 이탈했고, F-4E는 플레어(섬광탄)를 쏘며 화답했다. 편대는 가거도를 거쳐 서해안을 따라 미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하는 군산기지로 향했다가 수원기지로 복귀하며 3시간여에 걸친 국토순례 비행을 마무리했다.

팬텀과 KF-21이 날개를 나란히 하고 비행하다가 KF-21이 피치아웃을 하고 있는 모습. 공군 제공

비행에 참여한 제10전투비행단 제153전투비행대대 박종헌 소령은 “국민의 성금으로 날아올랐던 필승편대의 조국 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F-4)이 퇴역한 후에도 공군 조종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공동취재단,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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