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제38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1972년 6월17일 미국 워싱턴 워터게이트(Watergate) 호텔에서 비밀공작 요원 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미국 역사를 흔든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작이다.
건물 털이 사건으로 끝날 뻔했던 일은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하야로 이어졌다. WP의 신참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은 공화당의 요원이 사건과 연루돼 있다는 보도를 냈다. 여당인 공화당이 리처드 닉슨(사진) 당시 대통령의 재임을 위해 민주당 선거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했다는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사건이 백악관과 관계가 없다고 밝혔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WP는 사건의 배후가 백악관이라는 보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딥 스로트(deep throat)’이라는 백악관 내부 제보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계속된 보도에 대중들은 사건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의혹이 커지자 청문회가 열렸다.
사건은 ‘테이프’의 존재가 드러나며 급변했다. 텔레비전 생중계로 진행된 청문회에서 알렉산더 버터필드 전 대통령 부보좌관은 닉슨 전 대통령이 사건 은폐를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방해하라고 지시한 대화가 기록된 테이프가 존재한다고 폭로했다. 비판 여론은 들끓었고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주장하던 닉슨 전 대통령은 1974년 8월9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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