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인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의 레퍼런스(Ref) 57260, 무려 57개의 기능이 회중시계 하나에 들어갔다.
오늘날 건전지가 들어간 전자식 시계나 스마트워치가 보편화 된 세상에선 대수롭지 않은 시계처럼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쉐론 콘스탄틴의 레퍼런스 57260 회중시계는 태엽을 감아 작동하는 기계식 시계에서 50개가 넘는 복잡한 기능을 구현했다는 놀라움을 가진다.
탑재된 기능을 보면 퍼페추얼 캘린더, 천체 캘린더, 리피터, 뚜르비용, 파워 리저브 등이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소 1000만달러(14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시계 애호가가 아니라면 다소 생소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 기능들이 시계에 들어간다면 최소 수 천만원에서 심심찮게 ‘억’ 단위로 치솟기도 한다.
물론 이 기능들은 오늘날 스마트워치와 비교하면 정확도도 떨어질 뿐더러 가격도 수 백배 이상 비싼 ‘사치재’일 뿐이다. 다만 단순한 사치재가 아닌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한 개만 들어가도 ‘억’ 소리 나는 시계 기능 상당수는 18세기 한 명의 시계 장인으로부터 탄생했다. 오늘날 하이엔드 빅5 시계 브랜드 중 하나인 브레게(Breguet)의 설립자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다.
◆’풍차처럼 돌리고 돌리고’…뚜르비용은 왜 만들어졌나
뚜르비용(Tourbillon)의 역할은 중력에 의해 어쩔수 없이 생기는 오차를 줄이기 위한 장치다. 프랑스어로 '회오리 바람' 답게 시계가 작동할 때 풍차 바퀴처럼 회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 브레게가 처음 만든 이 장치는 손목시계나 회중시계 같은 휴대용 시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함이다. 휴대용 시계는 고정된 벽시계와 달리 사람의 자세에 따라 중력의 방향이 바뀌는데 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오차가 발생한다.
브레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각 편차에 관련된 부품을 마치 회전목마처럼 통째로 회전하면서 중력을 일정하게 분산할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오늘날 건전지가 들어가는 쿼츠 시계나 스마트워치 정확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날로그 시계가 주류였던 당시 시대에선 가히 혁신적인 기능이었다.
풍차 바퀴처럼 돌아 뚜르비용이 손목시계에 들어가기 위해선 크기를 극도로 작게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중력을 분산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무게도 가벼워야 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도 앞서 말한 브레게 뿐만 아니라 파텍필릭(Patek Philippe),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 등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에서 기술력의 상징으로 자사의 시계에 뚜르비용을 '굳이' 집어 넣는다. 물론 뚜르비용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바라보는 재미가 있긴 하다.
일단 뚜르비용이 들어가면 시계 값이 적게는 몇 천만원, 많게는 ‘억’ 단위로 뛰게 된다. 하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뚜르비용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중국의 시계장인(?)들이 유명 시계의 뚜르비용을 모방하다가 직접 뚜르비용을 생산하고 있다. 품질이 보증되지 않고 사실상 기능보다 디자인이 가까운 중국산 뚜르비용은 수십만원 선이다.
이외에도 중국의 시계 브랜드 씨걸(Seagull)의 경우 자체적인 뚜르비용을 만들 정도로 근래 엄청난 기술적인 진보를 이뤘다. 중국 브랜드 시계 치곤 다소 비싼 감은 있지만 스위스 시계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제대로 된 뚜르비용을 경험할 수 있다.
◆‘현재 시각은 링딩동리딩동♬’…리피터 기능
리피터(Repeater)는 간단히 말해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알람기능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가장 의문을 나타내는 기능일지도 모른다.
쿼츠시계나 스마트워치의 경우 버튼 하나만 누르면 현재 시간을 다양한 음성으로 알려줄 뿐더러, 이 기능이 들어간다고 해서 가격이 수 십 배 뛰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식 시계에서 리피터는 사치재 중 사치재를 보여주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건전지가 들어가지 않는 시계에 어떠한 원리로 현재 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지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는 기능이기도 하다.
리피터 역시 앞서 언급한 18세기 시계 장인 아브라함 브레게가 발명했다.
리피터는 시계 내부에 작은 종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버튼을 누르면 시계 내부에 있는 작은 망치가 종을 두드리며 시간을 알려주는 원리다.
예를들어 ‘동’ 소리가 나면 시간, ‘딩동’ 소리가 나면 15분, ‘딩’ 소리가 나면 1분을 가리킨다. 가령 3시17분이라면 ‘동동동, 딩동, 딩딩’ 소리가 나는 구조다.
리피터 구조는 비싼 기능으로 유명한 뚜르비용 보다 훨씬 비쌀 정도다. 뚜르비용이 들어가면 몇 천만원에서 시작하지만, 리피터가 들어가면 억대는 우습게 넘어간다. 리피터 기능이 탑재된 가장 저렴한 시계도 1000만원이 넘어간다.
또한 리피터는 나사 하나까지 복제해 이른바 ‘짝퉁’을 만들 수 있는 중국 시계장인(?)들도 흉내내기 어려운 기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리피터가 들어간 시계는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브레게 등 초고가 시계에 한정돼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인 롤렉스(Rolex), 오메가(Omega), 까르띠에(Cartier)에도 리피터가 들어간 모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백년의 달력기능, 퍼페츄얼 캘린더
퍼페츄얼(Perpetual Calender) 캘린더는 기계식 시계에 날짜를 표기하는 기능을 뜻한다. 역시 오늘날 쿼츠시계나 스마트워치에는 기본적으로 탑재된 기능이기도 하다.
기계식 시계에서 퍼페츄얼 캘린더는 월과 연도, 윤년을 계산하여 자동으로 바꿔준다. 즉, 시계가 멈추지 않는 이상 최소 백년은 날짜를 수정해 줄 필요가 없다.
전자식 시계에서는 간단한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할 수 있지만, 기계 장치로만 퍼페츄얼 캘린더를 구현하려면 약 200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퍼페츄얼 캘린더 기능이 들어간 시계는 기본적으로 수천만원이 넘어가게 된다. 가장 저렴한 퍼페츄얼 캘린더 기능이 들어간 시계는 1500만원 정도 한데, 이 마저도 쿼츠시계나 스마트워치에 비교하면 너무나 비싼 기능이다.
물론 윤년이나 30일로 끝나는 월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기능 없이 약간의 수동 조정을 해야하는 퍼페츄얼 캘린더의 경우 들어가는 부품의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구 소련의 시계 브랜드인 라케타(Raketa)에선 약간의 수동 조정이 필요한 퍼페츄얼 캘린더 기능의 시계를 10만원 이하 원가에 때려 박는 ‘인민의 기적(?)’을 실현하기도 했다. 이 라케타의 퍼페츄얼 캘린더 시계는 오늘날에도 빈티지로 20만원 전후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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