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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카드사들의 파산이 잇따르고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카드 사태가 금융대란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이듬해 은행들의 카드사 지원을 강제(4·3대책)하며 진화에 나섰다. 관치비판이 일자 당시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은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로 응수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관치금융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윤석열정부도 관치금융의 그늘이 짙다. 윤 대통령은 작년 10월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단한 현실을 언급하며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후 금융당국 수장들이 은행들의 돈놀이를 질타하며 상생금융 출연, 이자부담 경감을 압박했다. 화들짝 놀란 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리를 낮췄다. 그 결과 한국은행의 긴축정책 효과가 약화하면서 가계 빚은 급격히 늘어나고 수도권 집값도 불붙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반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7월 초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집값 상승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은행들은 두 달 새 22차례나 대출금리를 올렸다. 급기야 2금융권인 보험사의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시중은행보다 0.5∼1%포인트 낮아지는 기현상까지 빚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원장은 “(은행들이) 쉽게 금리를 올려 대응하고 있다”,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고 딴소리를 한다. “앞으로는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급박한 위기상황이 아닌데 이처럼 개입 타이밍이 더디고 냉·온탕을 오가는 관치금융 사례도 찾기 쉽지 않다.

탈이 나지 않을 리 없다. 은행들은 즉각 만기와 한도 축소 등 대출 옥죄기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다. 이제 집을 꼭 사야 하거나 전세를 옮겨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돈줄이 마르고 더 많은 이자에 시달릴 게 뻔하다. 조만간 ‘대출절벽’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어설픈 관치가 금리 왜곡과 시장혼란을 야기하며 통화정책까지 망친다. 세계적인 금리 인하 추세에도 한은이 가계부채와 집값 탓에 금리 인하를 주저하고 있지 않나. 아직도 관치금융의 망령이 떠돌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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