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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사 얽힌 장기 미제 사건…‘법원장 재판부’가 해결 [박진영의 뉴스 속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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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05 08:17:09 수정 : 2024-10-05 08: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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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무단 사용, 저작권 침해”
고소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대법 “사용 관여 증명 안 돼 무죄”
1심 원고 승소→2심 피고 승소
상고 안 해 확정, 6년 만에 종결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들 간 다툼이 벌어졌다. 고소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 맞소송이 이어졌다. 법원에 장기 미제로 남았던 이 사건은 최근 6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종 승자는 누구였을까.

 

건강기능식품 등을 파는 한 쇼핑몰 운영자 A씨와 다른 의약외품 쇼핑몰을 운영하던 약사 B씨. A씨는 2018년 7월 B씨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자신이 특정 임신 테스트기와 포도당 제품의 판매와 홍보를 위해 만든 이미지들이 B씨 쇼핑몰과 블로그에 무단으로 사용됐다는 게 이유였다.

사진=연합뉴스

A씨는 그해 9월 B씨를 상대로 1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이에 B씨는 ‘무고를 이유로 한 불법행위’에 따른 1075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맞소송을 냈다.

 

2019년 2월 1심은 “B씨가 A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판결문에 그 이유는 없었다. 소가 3000만원 이하 소액 사건은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판결서에 이유를 적지 않을 수 있다.

 

같은 해 B씨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 그는 벌금 100만원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끝에, 올 초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고소를 당한 지 5년 6개월 만에 누명을 벗은 것.

 

B씨가 문제의 이미지 사용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는지가 형사재판의 쟁점이었다. 해당 이미지가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이란 데는 이견이 없었다.

 

2022년 1심은 ‘A씨 나름대로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돼 창작성이 인정되는 편집 저작물’을 B씨가 그대로 사용했다고 보고, B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2심 판단은 달랐다. “최소한의 창작성이 인정된다”는 한국저작권위원회 의견 등을 감안해 1심과 같이 저작물로 보면서 B씨 쇼핑몰과 블로그에 사용된 점도 인정했으나, “B씨가 직접 사용하거나 그 사용에 관여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아닌 직원들이 했다고 본 것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뉴시스

사실 B씨와 A씨의 악연은 약사 면허가 없는 A씨가 약사법을 어기며 시작됐다. A씨는 2016년부터 쇼핑몰에서 약사 명칭을 쓰다가 이듬해 유죄판결을 받고도 종전 영업을 계속했다. 이에 B씨가 검찰에 진정서를 내 A씨는 2018년 또 약사법 위반으로 약식명령을 받았다. 2심은 “B씨가 A씨 처벌을 탄원하던 시기에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이 사건 이미지들을 사용하거나 사용을 용인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올해 1월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검사 상고를 기각했다.

 

그사이 두 사람 간 손배소는 장기 미제가 됐다. 이 사건을 매듭지은 건 조희대 대법원장이 올해 도입한 ‘법원장 재판 직접 참여제’에 따라 신설된 ‘법원장 재판부’, 법원장이 재판장인 합의부였다.

 

의정부지법 민사6부(재판장 임성철 법원장)는 지난 7월 말 “A씨가 B씨에게 5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B씨는 2심에서 무고를 이유로 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250만원으로 줄이고, ‘명예훼손 및 모욕을 이유로 한 불법행위’에 따른 25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추가했는데, 재판부는 명예훼손·모욕 부분만 일부 인용했다.

 

판결문에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되는 소액 사건임에도 2심 재판부는 그 이유를 소상히 밝혔다. 재판부는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등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 사실인 경우에 성립되는 범죄로, 신고자가 신고 내용을 허위라고 믿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실한 사실에 부합할 때엔 허위 사실 신고에 해당하지 않아 성립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A씨로서는 B씨 쇼핑몰에 이 사건 각 그림을 게시한 게 B씨인지, 아니면 B씨 직원들인지 알기 어려운 지위에 있어, B씨 고소에 중요한 사실에 관한 허위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판사들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뉴스1

다만 “A씨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B씨 주장은 일부 받아들여졌다. A씨는 한 제약 회사의 영업 사원에게 B씨가 “또라이”라며 “양심도, 경우도 없고”, “정신 질환이 의심될 정도”란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실 적시로 보긴 어려우나, B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의 표현”이라며 “A씨가 B씨를 모욕했다”고 결론 내렸다. B씨가 약사인 만큼, 접촉이 잦은 제약사 영업 사원들 사이의 B씨 평판을 나쁘게 만드는 모욕을 가볍게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A씨와 B씨 모두 판결을 수긍해 상고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전국 37개 각급 법원의 법원장 재판부들이 올해 3월1일∼7월31일 1·2심 본안 사건 4684건을 배당받아 판결을 선고한 2324건 중 하나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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