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글씨 쓰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도 색연필로 쓰는 것보다 훨씬 신났어요."
청색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이라엘(7) 양은 한글날을 맞아 외래어와 어려운 말을 쓰지 말자는 취지로 '바른말 고운말'이라는 표어를 정성스럽게 붓으로 썼다.
이 양은 "붓을 세워서 쓰는 게 낯설었지만 그래도 내년에도 대회에 꼭 참가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는 제578돌 한글날을 맞아 제15회 광화문광장 휘호대회가 열렸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연상케 하듯 300명의 참가자는 모두 두루마기를 입고 광장에 앉아 서예 실력을 뽐냈다.
고사리손으로 삐뚤빼뚤하지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아이들도, 섬세한 손놀림으로 한지에 난을 치는 나이 지긋한 노년의 선비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나 '진정한 앎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니라'라는 논어의 한 구절부터 '가나다라마바사'와 같은 기초적인 한글까지 가지각색의 휘호를 한지에 담으며 솜씨를 뽐냈다.
지인과 같이 대회에 참가한 조이현(16) 양은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를 골랐다.
조 양은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함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국경일을 기념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황선호(18) 군은 '훈민정음'이라는 네글자 아래 '한글을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라는 문구를 썼다.
황 군은 일제강점기에도 한글을 지켜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회에는 일본, 대만, 프랑스, 케냐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 묵객50명도 참가해 그동안 갈고닦은 서예 실력을 뽐냈다.
인도계 프랑스인 라비 타니카이무니(52) 씨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이곳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한 주요 진입점이 바로 언어"라고 대회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산 같은 기운으로, 바다 같은 마음으로'라는 문구를 적었다.
타니카이무니 씨는 "모든 사람이 (이 문구처럼) 열린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진다면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고, 모두가 친구가 돼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국적의 시노하라 리에(49)씨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써 내려갔다.
그는 "한국어를 공부할 때 읽은 시집 중 처음으로 읽은 시라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시노하라 씨는 "요리로 한국 문화를 처음 접했는데 한국어와 서예를 포함해 한국의 전통적인 것에 흥미를 가지게 돼서 (서예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대회를 주최한 한국예술문화원은 참가자들의 휘호를 심사해 오는 11일 홈페이지에 입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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