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성로 706개 점포 공동상권 묶어
성남 ‘로컬 핫플’ 육성 2년간 10억 지원
포항, 전국 첫 900억대 ‘민관 특례보증’
전남 등 ‘원도심 활성화 전담팀’ 가동해
침체 상권 붕괴 막고 경쟁력 강화 주력
전문가 “주민 정체성·동질성 회복 효과”
이달 8일 오후 대구 최대 상권 중 하나인 중구 동성로.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2번 출구를 빠져나오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가에 붙은 노란색 임대 플래카드다. 동성로는 옛 중앙파출소에서 대구백화점 본점을 거쳐 대구역까지 0.92㎞다. 10여년 전만 해도 하루 평균 50만명이 찾는 등 대구 대표 상권이었다. 이 도로를 걷는 동안 곳곳에 붙은 ‘임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점포 5~6곳 중 1곳은 빈 상태였다. 한 옷 가게 주인은 “젊은 층이 지역을 떠나면서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고 한숨지었다.
같은 날 오후 울산 중구 성남·옥교동. ‘젊음의 거리’를 중심으로 대학생과 직장인이 많은 찾는 상권이지만 최근 경기는 예전만 못하다는 게 상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의류, 잡화, 음식점 등 50개 점포가 자리 잡은 ‘보세거리’에는 두 집 건너 한 집에 임대가 붙어 있을 정도였고 4~5층 건물에 2개 층이 임대로 나온 건물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음식점 업주 강모(62)씨는 “물가가 오르면서 주머니 사정이 빠듯하다 보니 외식부터 줄이는 것 같다”며 “장사가 너무 안 돼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빈 점포 속출… 지방 상권 ‘흔들’
고물가·고금리 등 경기 악화 지속으로 도심에 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방 중심지 상권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9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상가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13.7%→13.8%), 소규모 상가(7.6%→8.0%), 집합상가(10.1%→10.2%)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전 분기보다 높아졌다. 세종시 상가 공실률은 전국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중대형 상가는 25.7%로 전 분기보다 0.9%포인트 올랐다. 전국 평균 공실률이 13.8%인 것과 비교하면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공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북(20.6%), 충북(20.1%) 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강원 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24.7%로 충북(26.4%)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전국 오피스 평균 공실률 8.6%의 3배 가까운 수치다.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2분기 19%대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같은 해 3분기부터 계속 20%대를 기록 중이다.
광주 최대 번화가인 금남로·충장로의 경우 공실률이 중대형 상가는 25%, 소규모 상가는 16.1%에 달했다. 이는 광주 도심 평균 공실률 16%, 9.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어서 지역 대표 상권의 명성이 무색한 상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과거 전남대와 충장로 상권 등을 이용한 20~30대가 줄어든 데다 상권의 중심축이 첨단지구 등으로 이동하면서 기존 상권의 침체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표 상권 살리기 팔 걷은 지자체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 상권 붕괴를 막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산 금정구는 지난 5월 ‘부산시 금정구 골목형 상점가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소상공인 운영 점포가 30개 이상 밀집한 구역을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하고 공동마케팅, 공동상품·디자인 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는 2028년까지 동성로에 있는 706개 점포를 대상으로 총 60억원을 투입해 동성로 브랜드 가치증진, 소상공인 성장지원, 문화행사 개최 등 전략과제를 진행한다. 경기 수원시는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가장 높은 팔달문로터리의 상권을 살리기 위해 ‘팔달문 성곽잇기 사업’을 진행하고 남수문~팔달문~팔달산 사이 성곽 304m 구간을 복원한다. 유입 인구를 증가시켜 주변 상권을 안정화하는 게 목표다.
경기 성남시는 이른바 ‘MZ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가 즐겨 찾는 서울 성수동·홍대 상권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동네상권을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 초부터 중소형 동네상권을 대상으로 ‘로컬상권 육성사업’을 추진해 내년까지 2년간 최대 10억원을 지원한다.
지자체들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는 소상공인 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 경남 김해시와 경주시는 중심상권과 구도심 빈 점포에 창업할 경우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한다. 강원 양구군은 업종 전환 또는 점포 리모델링을 원하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최대 2000만원까지 지급한다. 경북 포항시는 전국 최초로 민간 금융기관과 협력해 900억원이 넘는 ‘특례보증’ 재원을 조성해 골목상권에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특례보증은 담보력이 부족한 저신용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담보 없이 보증서를 발급해 대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일반 소상공인은 최대 5000만원, 2인 이상 다자녀 가구 소상공인은 1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번 사업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쇠락한 ‘원도심 살리기’ 열풍
지역 재생과 경제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원도심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선 지자체들도 있다. 대규모 택지개발로 조성한 신시가지와 기존 원도심 간 각종 인프라와 발전 수준에서 많은 격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구는 지난해부터 공실 상가가 늘어나는 동성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시는 동성로가 지난 7월 대구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된 데 이어 뮤직 페스타, 청년 문화제 등 다양한 축제 이벤트를 발굴할 계획이다. 전북 전주시는 고사동과 중앙동 일대에서 ‘글로컬·로컬브랜드 상권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웨리단길(웨딩거리)과 객리단길(전주객사길), 영화의거리 등을 활성화하는 사업이다. 우범기 시장은 “한옥마을과 영화제, 소리축제 등 다양한 관광콘텐츠의 연결과 융합을 통해 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은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역점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천 중구·동구 원도심과 인천 내항 일대를 전면 재개발해 문화·관광·상업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게 골자다. 이밖에 부산·울산·전남·충북 등 주요 지자체들도 각기 ‘원도심 활성화 전담팀’ 등을 꾸려 원도심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도심 재생이 침체한 지역 상권을 살리는 효과 이외에도 주민들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진수 경상국립대 교수(경영학과)는 “관광자원으로 원도심을 활용하는 방안과 함께 미래 신산업 유치와 재배치를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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