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사고 탓 DNA 분석 필요
28명은 지문 감식도 하기 어려워
유족 “신원 확인 전까지 장례 중단”
당국, 무안공항 내 합동분향소 설치
광주 민주광장 등 3곳도 조문 발길
“유족·봉사자들 위해 커피 선결제”
시민들 위로·연대 움직임 이어져
“아직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전남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틀째인 30일 사망자 179명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유족들은 울분을 토로했다. 30일 오후 8시까지 164명은 신원이 확인됐지만 나머지 15명은 아직 미확인 상태다. 사망자 신원확인이 늦어지면서 유족들은 하룻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왜 이리 신원확인이 더디냐”며 항의하는 유족도 많았다.
신원확인이 더딘 데는 참혹한 사고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고 현장에서 구조한 시신 가운데 5구만 온전한 편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구조한 시신편(片) 606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DNA) 분석을 의뢰했다. 나원오 제주항공수사본부장(전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시신 훼손이 심각한 상태”라며 “시신 인도는 현재까지 1차로 수거한 시신편의 DNA 확인이 끝난 뒤에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문 재취도 불가능한 사망자가 28명에 달한다. 나 수사본부장은 “사망자 179명 가운데 151명의 지문을 채취했다”며 “나머지는 지문 감식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어린이 25명에 대한 신원 확인도 쉽지 않다. 유족의 DNA를 검사해 일치 여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과 국과수는 이날 DNA 감식을 2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신속 판독기 3대를 사고 현장에 투입했다.
가족의 신원확인조차 못 한 유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 유족은 “어서 집으로 모셔야 하는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유족은 “이런 불효가 어딨냐”며 울먹였다. 형수 시신 훼손이 심해 유전자조차 검출할 수 없다는 당국의 말에 주저앉은 유족도 있었다. 한 유족은 “사체검안서를 아직도 못 받아 보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호소했다. 한 유족은 “DNA 분석 진행 상황을 사고 당일부터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검·경 등 수사기관의 수습 절차가 마무리되면 시신은 유족에게 인도된다. 하지만 이 절차도 검안의 부족으로 유족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나 수사본부장은 “사망자가 179명에 달해 물리적으로 시간이 소요될 듯하다”며 “국과수에 검안의를 추가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신원확인을 마친 시신은 다음달 8일쯤 유족들에게 인도될 전망이다. 시신 5구는 유족에게 인도가 가능하고 나머지 시신들은 수거한 시신편들의 DNA 대조 과정을 거친 후에 유족들에게 인도할 수 있다는 게 당국 설명이다.
유족들은 이날 시신 수습과 신원확인이 모두 완료될 때까지 장례 절차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한신 유족 대표는 이날 무안공항 2층 대합실에서 “아직 수습되지 않은 시신이 남아 있다”며 “시신이 확인되기 전까지 장례 절차 등 (관련된) 모든 일이 중단된다”고 말했다.
당국은 전남·광주지역에선 현경면 무안종합스포츠파크와 전남도청 만남의광장, 광주 5·18 민주광장 3곳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하지만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분향소는 무안국제공항 1층 2번 게이트 전면에 마련될 예정이다. 유가족 대다수가 공항에서 5㎞ 떨어진 무안종합스포츠파크보다는 희생된 장소에 분향소를 차려야 한다고 요구한 점을 정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각 분향소는 정부가 이번 참사의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한 다음달 4일 밤 12시까지 운영된다.
장례와 관련된 직간접적 비용은 제주항공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박 대표는 “유가족이 금액을 신경 안 쓰고 장례 치를 수 있게 제주항공 관계자와 협의했다”고 말했고, 이정석 제주항공 경영기획본부장은 유족 대표단과의 협의 내용을 유가족들에게 재차 확인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이날부터 기체 합동 검식을 시작했다. 전남경찰청·전남소방본부 등 조사 당국은 이날 오전 7시40분부터 무안공항 활주로 사고기 기체 부근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사고지점 밖 출입 통제선에는 경비인력을 한층 강화하고, 참사로 무너진 공항 활주로 담벼락을 나무판자로 덧대 시야를 가렸다. 기동순찰대 차량이 사고 현장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가운데, 감식팀은 수거물이 담긴 종이상자를 계속해서 차량으로 옮기는 작업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편 무안공항에서도 선결제와 같은 위로·연대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날 오전 11시쯤 공항 2층 4번 게이트 인근에 있는 한 카페에는 ‘봉사자 및 유가족은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 드시길 바랍니다. 선결제 됐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카페 점주는 “결제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며 “아메리카노 100잔, 카페라테 100잔을 유가족과 봉사자들이 마실 수 있도록 해달라며 선결제를 해줬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탄핵 집회로 선결제 문화가 자리 잡았는데, 이곳에도 있다니 유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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