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치’ 유지하던 헌재 기류서
8인 재판관 소신대로 의견 밝혀
최장 평의기간 기록 尹 탄핵선고
헌정사 첫 소수의견 나올 가능성도
24일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에선 헌법재판관 8명의 의견이 크게 네 갈래로 갈라졌다. 이번 같은 중요 사건 선고에서 재판관들이 ‘교통정리’를 하지 않고 각자 소신에 따라 의견을 낸 건 예상 밖이라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과 예측이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판관들, 의견 안 모은 채 소신 결정?
헌법재판관 8명은 이날 상반된 논리의 두 가지 기각 의견과 인용, 각하 의견을 각각 냈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인 문형배 재판관과 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 그리고 김복형 재판관은 모두 기각 의견을 냈지만 세부 쟁점 중 하나인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와 관련해선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문·이·김·정 재판관은 결정문에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을 때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을 임명하지 않은 게 헌법·법률 위배 행위라면서도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 재판관은 한 총리의 재판관 헌법후보자 임명 거부를 위헌·위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은 한 총리가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고 ‘내란 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지 않은 게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잘못”이라고 봤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요건(의결정족수)을 국무총리 기준(재적 의원 300명 기준 151명)이 아닌 대통령(200명)의 경우와 동일하게 봐야 한다면서 각하 의견을 밝혔다.
통상 헌재는 ‘헌법 해석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한다’는 취지에 따라 재판관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모아 선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관들이 모여 사건 쟁점에 관해 논의하는 평의에서 의견을 어느 정도 모은 뒤 표결 절차인 평결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모든 사건에서 반드시 의견을 모아야 하는 건 아니다. 헌재법은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다수의견과 다른 의견이 나와도, 결정문에 소수의견을 기재하는 식으로 독립성을 보장한다.
한 총리 탄핵심판에선 헌법재판관들이 따로 의견을 모으지 않고 소신대로 의견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헌재는 1월23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선고에서 인용 4명, 기각 4명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결과를 내놔 사회적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지난달 27일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관련 권한쟁의심판과 이달 13일 최재해 감사원장·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 탄핵심판에서는 나란히 전원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일부 재판관은 별개의견을 달기도 했다.
◆尹 사건서도 의견 엇갈릴까
애초 법조계에선 이 같은 흐름에 따라 한 총리 사건 선고에서도 재판관들이 가급적 전원일치로 결론을 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변론기일만 11차례였던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달리, 한 총리 사건은 단 한 차례 만에 변론 절차가 종결되는 등 쟁점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양측(청구인과 피청구인) 의견 대립도 덜했기 때문에 이런 전망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같은 모습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 사건은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이후 지금까지 평의를 이어왔다. 이미 역대 대통령 탄핵심판 중 최장 평의 기간 기록을 세운 상황이다. 일각에선 평의가 길어지는 이유를 놓고 재판관들의 이견이 큰 탓에 조율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세부 쟁점별로 한 총리 사건보다 의견이 더 분화하면서 평의가 길어지고 있는 것이란 추측도 이어지고 있다. 재판관들의 의견 교통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음 달로 넘어갈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 사건의 남은 쟁점들에 대한 평의를 마치는 대로 선고기일을 지정하고 평결과 결정문 작성 등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가 4월18일 만료되는 만큼 그 전에는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 소수의견이 적힐지도 관심사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때는 전원일치로 탄핵소추가 인용됐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땐 탄핵소추를 기각한다는 결론만 공개돼 일부 재판관의 소수의견 여부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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