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갑질 방지법’ 후 첫 제재
연매출 0.1로 상한보다는 크게 낮아
양사 반발… 美·EU 통상전쟁 격화 전망
유럽연합(EU)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빅테크 애플과 메타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총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 3월 이른바 ‘빅테크 갑질 방지법’으로 불리는 디지털시장법(DMA) 발효 이후 첫 제재다. 미국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있을 시 보복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경고에도 EU가 과징금 부과를 강행하면서 미국과 EU의 ‘통상 전쟁’이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DMA 위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애플에 5억유로(약 8133억원), 메타에 2억유로(약 325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집행위는 애플의 자체 규정인 ‘외부 결제 유도 금지’(anti-steering) 조항이 DMA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앱 개발자는 누구나 애플 앱스토어보다 저렴한 앱 구매 옵션이 있다면 고객에게 이를 알리고 앱스토어에서 다른 외부 결제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애플이 이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메타에 대해서는 2023년 11월 도입한 ‘비용지불 또는 정보수집 동의’(pay or consent) 모델을 문제 삼았다. 이 모델이 메타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이용자 중 서비스 이용료를 내지 않은 경우 광고 목적 데이터 수집에 사실상 강제 동의하도록 함으로써 DMA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집행위는 두 기업에 위반 사항을 60일 이내에 시정할 것을 명령했다. 미이행 시 별도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DMA는 구글, 애플 등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규제다. 전 세계 빅테크 7개 기업을 ‘게이트 키퍼’로 지정해 규제하는데, 7곳 중 중국 바이트댄스와 네덜란드 부킹닷컴을 제외한 알파벳, 애플,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5곳이 미국 기업이다. 이들 기업이 유럽에서 자사 서비스에 불공정한 특혜를 줘 경쟁사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연간 총 매출의 1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며, 법을 반복적으로 어겼다고 판단되면 과징금이 최고 20%까지 올라간다.

다만 이날 애플과 메타에 대한 과징금은 각각 연매출의 약 0.1 수준으로, DMA 과징금 상한인 연매출 10에는 크게 못 미친다. 애플과 메타의 연간 총매출액은 2023년 각각 3833억달러(약 545조원)와 1645억달러(약 234조원)였다. 집행위가 과거 독점금지 소송에서 빅테크 회사들에 부과했던 수십억유로의 막대한 벌금과 비교해도 경미한 수준이다. 집행위는 DMA가 신생 법이며, 두 회사의 위반 기간이 길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과징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애플과 메타는 즉각 반발했다. 애플은 성명을 내고 “EU 집행위가 애플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겨냥하고 있다”며 “우리 기술을 무료로 내놓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메타도 “미국의 성공한 기업에 불이익을 주면서, 유럽 및 중국 기업에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며 “단순한 벌금 문제가 아니라 메타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꾸라는 요구다. 수십억달러 관세를 부과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날 애플과 메타에 대한 과징금 부과 결정은 지난해 3월 DMA 전면 시행 이후 처음 이뤄졌다. 당초 DMA 제재 발표는 지난달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미 기업에 대한 EU 규제에 대해 수차례 경고장을 날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서양 무역전쟁이 고조되면서 여러 차례 연기됐다. 그러나 관세 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이날 과징금 부과 발표가 강행된 것으로 보인다.
EU는 그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빅테크를 협상의 지렛대로 강조해왔다. 앞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유예하겠다고 한 90일 동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빅테크에 대한 세금 부과 등을 고려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집행위 고위 당국자는 “관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늘 결정은 독립적 결정이며 오롯이 DMA 집행에 관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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