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그을음 의심한 경찰 추궁… 방화 사실인정
서울교통공사, 6월3일까지 특별 경계근무 강화 예정
“누군가 ‘뛰어!’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제가 있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어요. ‘시너 뿌렸다’는 말도 들렸고요”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직장인 김모(24)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씨는 "영화 ‘부산행’처럼 수십 명이 소리 지르며 달려와 열차 안이 아수라장이 됐다"며, 연기를 본 승객들이 혼비백산해 뛰쳐나가는 상황을 떠올렸다.

이날 오전 8시 43분께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를 달리던 열차 객실에서 불이 났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승객 중 한 명이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형 토치로 불을 붙인 방화 사건으로 보고 있다.
열차는 마포역 약 300미터 앞 지점에서 긴급 정차했으며, 문이 열리자 승객 약 400명이 어두운 터널을 따라 마포역 방향으로 대피했다. 당시 방송 안내는 없었고, 일부 승객들은 연기 속에서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며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연기 흡입과 넘어짐 등으로 2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중에는 발목 골절 등 경상을 입은 사례도 있었다. 화재는 기관사와 승객들이 소화기를 이용해 자체 진화에 나서며 10시 24분께 완전히 꺼졌다.
현장에는 소방 166명, 경찰 60명을 포함한 총 230명의 인력과 장비 68대가 동원됐다. 한때 여의도역∼애오개역 구간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으며, 마포역과 여의나루역은 무정차 통과 조치가 이뤄졌다. 지하철은 오전 10시 6분께 정상 운행을 재개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 45분쯤 여의나루역 인근에서 방화 용의자로 추정되는 60대 남성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해당 남성은 화재 직후 선로를 통해 탈출하다 들것에 실려 나오던 중, 손에 그을음이 짙게 묻어 있어 경찰의 의심을 받았다. 추궁 끝에 방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점화기, 유리통 등 범행 도구도 발견돼 감식이 진행 중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모방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오는 6월 3일까지 전 역사와 열차에 대해 경찰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특별 경계근무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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