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인 의무 복무·외국인 모병 거론
兵부족 완화 보탬 되는 다문화 병사
배척과 차별로 상처 주는 일 없어야
“몽골 청년을 모병해야 합니다. 현재 사병에게 주는 급여 정도면 줄 쫙 섭니다. 미국이 했던 것처럼 영주권도 주고 국적도 주면 됩니다.”
육사 출신 영관급 장교가 수차례 밝힌 지론은 파격적이다. 군인으로서 자발적 동기부여가 가능한 모병제를 하되, 부족 인원은 몽골 등 외국에서 모집하자는 것이다. 답답한 군 현실에서 나온 농담인 줄 알았으나 웃음기 싹 가신 얼굴엔 진지함이 넘쳤다. “로마제국도 게르만 용병에게 국방을 의존하다가 망했는데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묻자 “앞으로 이런 식 아니면 방법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 장교는 대위 시절 중대장을 마치고 육군 핵심 병과인 보병을 떠났다. ‘징병제하에서 입대한 장병이 다칠라 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병사 관리에 집중하다 보니 군인인지 보이스카우트 인솔교사인지 알 수 없게 된 자괴감’이 전과(轉科) 이유다.

외국인 모병의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저출산·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2030 남성의 ‘희생’에 의존하는 징병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국방부·병무청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군 병력은 2019년 56만명에서 2025년 7월 45만명으로 6년 만에 11만명이나 줄었다. 정전 상황에서 최소 필요 병력인 50만명에서 5만명이나 부족하다. 그중 징병제인 육군 병사는 30만3000명에서 20만5000명으로 32.3%(9만8000명)나 줄었다. 한국국방연구원·국회예산정책처 등의 미래 병역자원(병역판정검사의 대상이 되는 20세 이상 남성) 분석은 암울하다. 2014년 37만8000명에서 2024년 25만5000명으로 감소하고 2042년에는 12만5000명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현역 판정률(현재 86.7%)을 적용한다면 실제 군에 제공되는 병력자원은 10만명에 불과하게 된다.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출생아의 주민등록인구에 근거한 통계라서 ‘확정된 미래’다. 국방부는 보충역의 감축, 여군 확대, 예비군·민간인력 활용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나, 여성징병제와 같은 획기적 전환이 없으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이 다문화 병사의 증가다. 18세 이상 남성은 지속적 감소 추세인 것에 비해 전체 출생자 중 다문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은 현재 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다문화 병사에 대한 별도 집계는 하지 않는다. 한국국방연구원 홍숙지 연구위원은 2022년 1% 수준인 다문화 장병의 입영 비율이 2030년부터 5%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0년에는 약 1만명이 다문화 배경의 장병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1개 사단 규모다. 병력 부족 현상 완화와 국군 전력 유지에 다문화 병사가 주요 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월 육군 부대에서 탈북민 어머니와 중국 국적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22세 일병이 ‘짱개’, ‘짭코리아(가짜+코리아)’와 같은 혐오 발언을 듣다가 생활관 2층에서 투신해 척추를 크게 다치는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졌다. 2022년에는 오랜 중국 유학으로 인한 어눌한 발음 등을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육군 이등병이 일반전초(GOP)에서 숨진 사례도 있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미국, 베트남 출신 장병에 대한 차별도 접수됐다. 도대체 군에는 다문화 문제를 전담하는 조직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결박하는 국제적 망신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등 온 사회가 시끄러웠다. 그에 비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군 장병에 대한 차별, 혐오 사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과거 병역을 면제받던 다문화를 넘어 이젠 입대 연령 귀화자에 대한 의무 복무나 외국인 모병까지 거론되는 세상이다. 군은 탈북민·다문화 가정, 해외 장기거주 귀국 장병이 차별받지 않고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 장병에 대한 다문화, 인권 교육 등 예방 노력이다. 문제 발생 시엔 지휘 계통에 책임을 물어 소극적 대응을 하도록 하기보단 가해자를 엄단해 일벌백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별, 인격 모독, 집단 따돌림으로 병사를 잃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