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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北의 진화타겁, 한국은 대안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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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0 22:54:39 수정 : 2025-09-10 22:54:38
박수찬 외교안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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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기 틈타 ‘체급’ 키워… 창의적 비핵화 해법 시급

진화타겁(趁火打劫). ‘불난 틈을 타 도둑질한다’는 뜻이 담긴, 상대방이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익을 취하거나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다. 이 단어만큼 북한의 대외 행보를 잘 드러내는 표현은 찾기 힘들다. 상대가 혼란에 빠져 있거나 궁지에 몰려 있을 때 평양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였다. 이를 통해 북한은 정치·군사적 능력을 확대하고 ‘체급’을 키워왔다.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옛소련이 혼란스럽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는 북한에게 ‘물건’을 빼낼 기회였다. 앞날이 불투명하던 옛소련 미사일 개발 조직 중 하나인 마케예프 설계국 등과 접촉해 기술자료를 확보했다. 생활고를 겪던 기술자들을 후한 대우를 보장하며 북한으로 초청, 미사일 기술을 빼냈다. 일부 시도는 러시아 당국의 저지로 실패했지만, 북한은 원하는 바를 얻었다. 그 결과물이 북한이 만든 미사일 중 처음으로 사거리 1000㎞를 넘어선 노동-1호, 괌 타격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무수단이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차장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북한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으로 러시아의 병력·장비 소모가 급증하자 북한은 막대한 양의 탄약과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외교적 지지를 보냈으며, 러시아 쿠르스크 탈환을 위해 파병을 단행했다.

그 대가로 평양은 러시아로부터 정치·외교·경제·군사적 대가를 챙겼다. 러시아는 북한과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면서도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활동을 종료시켰다. 러시아는 자국 군수공장에서 북한 전문가들이 경험을 쌓도록 해주고 북한에 단거리방공체계와 전자전 체계, 전파교란장치 등을 제공하면서 사용법을 전수했다.

수십년에 걸친 진화타겁 행보는 북한의 지위를 글로벌 플레이어 수준으로 높였다. 모두가 북한을 외톨이·미치광이라고 무시할 때 지난한 준비와 계산을 거듭하며 꾸준히 자신의 길을 닦아온 결과다.

북한의 이러한 행보 끝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 고착화다. 확장억제와 북한의 핵무기, 한·미 동맹과 북·러 관계로 대표되는 ‘공포의 균형’ 위에서 김정은 체제 영속을 확보하려는 것이 북한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꽉 막힌 남북관계를 뚫는 길을 만들 수 있을까. 역대 정권은 대북 경제협력 등을 통해 화해·협력을 추구하거나 한·미 동맹의 압도적 힘을 과시해 북한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을 저지하는 데 큰 효과가 없었다. 그사이에 북핵 폐기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북한 핵능력 강화와 북·러 협력 소식이 끊이지 않는 지금, 비핵화·긴장완화로 이어지는 창의적 해법이 절실하다. 북한과 주변국들이 분주히 움직일 때, 우리만이 무심한 채 남아있다면 반전의 카드를 얻지 못한 채 최선 대신 차악을 강요받는 결과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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