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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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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1 22:58:03 수정 : 2025-09-21 22: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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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리려고 학교 도서관 서가를 살피는데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수’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이었다. 목표한 책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내내 그 제목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아 함께 빌렸다. 귀가하는 지하철에서 거의 모든 승객이 휴대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출현하기 전 종이책이나 종이 신문을 읽던 광경과 대비되었다. 종이책에 대한 애수가 일었다.

종이책은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추구하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발명된 문자(written language)가 종이와 결합하여 탄생했다. 문자는 5000∼6000년 전에 발명되어 음성이나 몸짓과 같은 비언어 행위, 상형문자와 같은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게 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능하던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혁명적으로 확장했다. 시각적·청각적·공간적 한계를 뛰어넘고, 시간적 한계도 무너뜨리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금속활자를 만나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화하면서 인류의 정보 생산과 유통, 지식의 저장과 보급의 총아로 역할했다.

정치경제학자 이니스(Innis)는 미디어가 지식을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어떻게 전달하는가를 분석하며, 종이는 법, 행정, 철학과 같은 공간 확장을 기반으로 한 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친 공간 편향적 미디어라고 했다(‘해롤드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 사상’, 김상호·이호규). 최근의 국내 연구는 종이책의 가치에 대해 “정돈된 환경에서 고요하게 책 읽기에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디지털 미디어의 과도한 시청각 자극에 무뎌진 현대인들에게 감각을 일깨우고, 사유와 정화의 시간을 제공”하며 “인간의 시각·청각·촉각·후각 간, 가벼운 정보와 무게감 있는 지식 간, 보는 것과 읽는 것 간, 디지털과 아날로그 간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지적한다(‘디지털 시대 종이책의 아날로그적 가치’, 이선주·심두보). 지난해 출간 6개월 만에 22쇄를 찍은 책(‘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을 쓴 나민애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광란의 사교육에 빠진 세태에 대해 ‘과한 사교육 하지 않아도 된다. 책만 열심히 읽는다면’이라고 충고한다. ‘가로등은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인가요’와 같은 문해력 문제도 학원이 아니라 독서를 통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박완서 선생은 그의 산문집에서 좋은 목적을 지녔지만 다목적 댐으로 인해 물속으로 사라지는 옛 주거 양식과 생활문화에 대한 애수를 피력했다. 종이책이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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