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질서 새 변수 부상 가능성 높아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세계적 경쟁이 초미의 관심사다. 2022년 챗GPT의 등장은 AI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고, 올 초 딥시크의 부상으로 미국에 이어 중국도 AI 시대의 유력한 슈퍼파워로 도전장을 던졌다.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 유럽은 AI의 규제를 강조하는 세력으로 주로 자리매김했다. 인공지능의 새로운 시대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숨은 행위자가 인도다.
그러나 세계 경제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인도는 무시할 수 없는 AI 미래의 잠재적 세력이다. 일단 인도는 현재 AI 시스템에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데이터 어노테이션(주석 작업)에서 이미 세계의 중심이다. 사진이나 그림, 텍스트 등을 구분해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작업의 상당 부분이 인도에서 진행된다는 의미다.
달리 말해 인공지능 모델의 구상과 디자인은 미국에서 하더라도 모델을 돌아가게 만드는 훈련은 인도의 ‘학교’에서 진행된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인도는 고학력자를 저렴한 가격에 대거 동원할 수 있는 대표적 국가인 데다, 국민 다수의 영어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AI 주석 노동자는 전 세계적으로 현재 40만명 정도인데, 절반이 인도에 있다고 추정한다. 인도와 비슷한 조건의 필리핀도 주석 작업의 또 다른 파워하우스다.
국제 분업 구조에서 바닥에 해당하는 수준이지만 인도 사회가 AI 시스템에 익숙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는 기반은 중요하다. 이에 덧붙여 인도는 AI 사용자 수가 엄청나다. 예를 들어 인도는 미국에 이어 오픈AI나 앤스러픽의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시장이다.
최근 퍼플렉시티는 인도 통신사 에어텔의 3억6000만 가입자에게 1년간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섰다. 인도의 화이트칼라 직장인 가운데 92%가 AI를 사용하는데 이는 미국의 64%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AI 공급망에서 인도는 제조업의 저임금 조립공장의 역할을 담당할 뿐이고, 단지 세계적 미국 기업의 소비 시장에 불과하다고 얕볼 수 있다. 그러나 20년 전, 10년 전의 중국을 상기해 보라. 당시 중국은 싸구려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의 세계 공장이었을 뿐이고 선진국의 고급 제품을 소비하는 인구 많은 시장에 불과했다.
누가 전기차 분야에서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독보적 선두주자로 부상할 것을 예상했는가. 중국 자동차 시장은 2009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지만 2020년만 해도 중국에서 팔리는 자동차의 34%만이 중국 브랜드였다.
2025년 중국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 비중은 69%로 치솟았다. 중국은 자동차에서 내연기관을 뛰어넘어 EV로 달려갔듯, 금융 분야에서도 중국은 현금에서 신용카드의 시대를 뛰어넘어 스마트 페이로 직행했다.
AI 분야에서 중국과 유사한 인도의 굴기(屈起)를 목격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인도는 중국과는 다른 특징들이 있다. 정치 제도가 중국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다. 사회도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언어나 문화에 있어 다양성이 존재하며 뿌리 깊은 사회경제적 불평등도 심각하다. 개방적이고 다양한 인도와 사회문화적 결집력이 강하면서 권력도 집중된 중국, 앞으로 두 인구 대국이 AI 시대를 어떻게 열어갈지 흥미롭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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