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혐의만으로 “야당 해산해야”
삼권분립 훼손, 견제 없는 정치는
‘다수의 독재’라는 오명 부를 뿐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 김앤장 변호사 30여명이 청담동 카페에서 심야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 지인인 김앤장 변호사가 전화해 “술집에 김앤장 변호사 30명 모으는 건 김영무 대표변호사도 못한다”고 했다. 100% 거짓이라는 얘기다. 그래도 언론인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까지 지낸 인사가 물증 없이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봤다. 지난달 1심 재판부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허위로 판단된다”며 김 전 의원과 첫 보도를 한 유튜버 등이 함께 한동훈에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 3심이 남았지만 소송 제기 후 2년 반이 넘도록 증거 하나 내놓지 못한 점으로 미뤄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근 민주당이 제기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한덕수 등 회동설과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개입 의혹을 접하고 ‘청담동 술자리’를 떠올린 이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명색이 대법원장과 총리, 전직 검찰총장 회동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누군가의 전언에 불과하고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채널은 공교롭게도 그때와 같다. 당사자인 조 대법원장은 사실을 부인하는 공개 입장문을 냈다. 그와 일했던 한 전직 대법관은 “천생 딸깍발이 스타일”이라고 했다. 외부 인사들과 정치적 사안을 논의할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의혹을 터뜨린 민주당 서영교·부승찬 의원은 해명 책임을 유튜브 채널로 넘겼다.

진위와 무관하게 여당의 대법원장 사퇴 압박은 더 거칠어졌다. 결백하다면 특검 수사를 받으면 될 일이라고 한다. 법치 국가에서 범죄에 연루된 혐의가 없더라도 수사를 받고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법부를 겨냥한 공세는 이재명 대통령의 ‘권력 서열’ 발언 이후 증폭됐다. 이 대통령은 11일 취임 100일 회견에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고 했다. 입법부가 사법부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입법과 행정, 사법부가 견제·균형을 통해 어느 한쪽의 권력 남용을 막는다는 교과서적 삼권분립 원칙을 무색게 한다. 입법·행정부를 장악한 민주당이 사법부마저 무력화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비친다.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을 견제해야 할 제1 야당을 향해선 정당 해산 빌드업이 한창이다. 헌정 질서를 뒤흔든 12·3 비상계엄 사태에 국민의힘 책임이 작지 않고, 내란 사건 연루자에 대해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41% 표를 얻은 제1 야당을 해산시키는 건 엄정한 법적 판단 없이 불가능하다. ‘최고 권력은 국민’이라는 대통령 말대로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 의사 또한 중요하다. 내란·김건희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 혐의가 드러났다 해도 실체적 진실을 따져야 할 절차가 남아 있다.
민주당 정권의 취임 일성은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은 국민 소망도 비정상의 정상화다. 오늘(현지시간) 미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이 대통령이 자랑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복원을 실감하길 고대하고 있다. 민주당 출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호주 학자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첫째 요소는 권력에 있는 사람들이 규칙에 복종하는 것이다. 법의 지배다. 민주주의란 ‘권력의 자기 통제’”라고 했다. 그것에 실패한 전임 대통령 부부는 지금 영어(囹圄)의 신세다.
신군부 시절 사형 판결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사법개혁추진위 위촉식에서 “한때 어려움에 빠졌던 영국을 구한 것은 감리교, 언론과 법원이었다”고 했다. 그날 위촉장을 받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사법 피해자였음에도 일체의 유감스러운 감정을 갖지 않고 사법권을 존중했다”고 회고했다.(‘한국의 새 길을 찾다’) 입법·행정·사법부가 일렬종대로 움직이고 사실상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체제가 민주당이 만들겠다는 진짜 대한민국은 아닐 것이다. 그건 ‘다수의 독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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